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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나 드디어 금메달 땄어! 나 태권도 시켜줘서 너무 고마워” [파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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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8-09 15:31:45 수정 : 2024-08-10 02: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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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태권도 대표팀의 김유진(24·울산광역시체육회)이 태권도를 접한 계기는 할머니의 권유였다. 손녀가 자기 몸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갖길 바라던 그의 할머니는 김유진이 8살이 되던 해에 태권도장으로 데려갔다. 호신술을 위해 시작한 태권도였지만, 김유진은 엘리트 태권도 선수의 길을 선택하게 됐다. 그렇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우연한 계기에 만들어졌다.

 

김유진이 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파리올림픽 태권도 여자 57kg급 결승전에 출전해 이란 나히드 키야니찬데와 경기를 승리 후 포효하고 있다. 파리=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학창 시절 또래들보다 키가 한참 컸던 김유진은 서울체고 재학 시절 청소년 국가대표에 선발되며 태극마크를 달았다. 한국체대로 진학한 뒤에는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우승했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선 동메달을 땄다. 자연스레 김유진의 시선은 2024 파리 올림픽으로 향했다.

 

다만 올림픽을 준비하기엔 시간이 짧았다. 김유진의 세계태권도연맹(WT) 올림픽 랭킹은 24위에 불과했다. 2024 파리 올림픽 출전권이 자동 부여되는 1~5위와는 거리가 컸다. 그래서 대륙별 선발전을 거쳐야만 올림픽 출전권을 얻을 수 있었다.

 

김유진이 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파리올림픽 태권도 여자 57kg급 결승전에 출전해 이란 나히드 키야니찬데와 경기 중 발차기 공격을 하고 있다. 파리=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김유진이 대륙별 선발전에 나가는 과정도 험난했다. 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한 선수가 남녀 각각 2명 미만인 국가에게만 대륙별 선발전에 나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여자 67㎏ 초과급 이다빈만이 여자 선수의 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한 한국은 대륙별 선발전 여자부 1개 체급에 선수를 내보낼 수 있었다. 대한태권도협회는 지난 1월 내부 회의와 투표까지 거쳐 대륙별 선발전에 나설 체급을 여자 57㎏급으로 정했다. 이때 대한태권도협회가 여자 57kg급이 아닌 다른 여자 체급을 선택했으면 김유진에겐 올림픽 출전권 획득을 위해 도전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김유진에겐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국내 선발전을 통과한 김유진은 대륙별 선발전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을 따냈고, 올해 3월 중국 타이안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아시아 선발전 4강에서 줄리 맘(캄보디아)를 꺾고 결승에 진출하며 비로소 올림픽 출전권을 거머쥐었다.

 

김유진이 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파리올림픽 태권도 여자 57kg급 결승전에 출전해 이란 나히드 키야니찬데와 경기를 승리 후 악수하고 있다. 파리=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우여곡절 끝에 출전한 올림픽 본선. 세계랭킹이 낮은 탓에 태권도 금메달 유망 후보에서 김유진의 이름은 없었다. 그러나 김유진은 ‘언더독의 반란이란 이런 것’을 제대로 보여주며 ‘금빛 발차기’를 선보였다. 아시안게임에서도 동메달에 그쳤던 선수가 생애 첫 올림픽 출전에 금메달을 따낸 것이다. 그야말로 큰 무대 체질이라고 할 만 하다.

 

김유진은 8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의 그랑 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태권도 여자 57㎏급 결승에서 세계랭킹 2위 나히드 키야니찬데(이란)을 라운드 점수 2-0(5-1 9-0)으로 완승을 거두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으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유진은 금메달까지 오는 여정에서 모두 상위 랭커를 꺾었다. 16강전에서는 세계랭킹 5위이자 2020 도쿄 동메달리스트인 하티제 일귄(튀르키예)을 꺾었다. 8강전에서는 세계랭킹 4위이자 한국계 캐나다 선수인 스카일라 박을 제압했다.

 

준결승에서는 한 술 더 떠서 세계랭킹 1위인 뤄중쯔(중국)을 눌렀다. 뤄중쯔는 2022 과달라하라 세계선수권 챔피언이기도 하다. 결승에서는 2023년 바쿠 세계선수권 우승자인 키야니찬데까지 꺾어냈다. 세계랭킹 5위,4위,1위,2위를 꺾어낸 것이다. 김유진이 이날 보여준 기세가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 태권도경기장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태권도 여자 57kg급 결승에서 한국의 김유진이 이란의 나히드 키야니찬데를 꺾고 금메달을 확정한 뒤 태극기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태권도가 올림픽 여자 57㎏급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16년 만이다. 여자 57㎏급은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2000년 시드니 대회부터 금메달을 놓치지 않았던 체급이다. 2000 시드니에서 정재은을 시작으로 2004 아테네에서 장지원, 2008 베이징은 임수정이 금메달을 땄다. 이후 2012 런던부터 2020 도쿄까지 금메달은 고사하고 은메달과 동메달도 나오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김유진이 16년 만에 금맥을 이은 것이다.

 

아울러 김유진의 금메달은 이번 올림픽 한국 선수단의 13번째 금메달이다. 이는 한국의 역대 단일 올림픽 최다 금메달 타이 기록이다. 한국은 2008 베이징(금 13개·은 11개·동 8개)과 2012 런던(금 13개·은 9개·동 9개)에서 따냈던 금메달 13개가 파리 올림픽 이전 역대 최고 성적이다.

 

김유진이 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파리올림픽 태권도 여자 57kg급 결승전에 출전해 이란 나히드 키야니찬데와 경기를 승리 후 기뻐하고 있다. 파리=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시상식 뒤 믹스트존에 들어선 김유진은 “정말 행복하다. 개인적인 명예도 그렇고 태권도 종주국의 자존심을 세우는 데 보탬이 되어 스스로에게 잘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오늘 정말 행복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좀 더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금메달을 따냈기에 더 특별하게 다가올 법 하다. 김유진은 “여태껏 운동해왔던 과정을 돌아보면서 ‘내가 이까이 꺼(이까짓 거) 하나 못하겠어’이런 마음으로 올림픽에 임했다. 올림픽에 나서는 것 자체가 정말 행복해서 즐기자는 마인드로 했다. 올림픽 준비를 너무 힘들게 했기 때문에 자신있었다”라고 말했다.

 

김유진의 자신감 원천은 혹독한 훈련량이었다. 그는 “매일 운동을 갈 때마다 지옥길 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훈련량이 많았다. 어떤 선수가 그렇지 않았겠냐만은. 나는 정말 스스로를 몰아붙이면서 혹독하게 했다. 하루에 2시간 이상씩 3번을 운동했다. 한 번 운동할 때마다 발차기를 1만 번씩은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유진이 8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태권도 여자 57kg급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상위 랭커들을 줄줄이 격파하고 금메달을 따낸 것에 대해선 “세계랭킹이 높다고 꼭 막 잘하는 건 아니다. 솔직히 세계랭킹 같은 건 신경도 안썼다. 그냥 제 자신만 무너지지 말자, 무너지지 말자며 스스로만 바로 잡았다”고 말했다.

 

금메달을 딴 후 가장 떠오른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김유진은 “할머니요”라고 답한 뒤 “아직 안 주무시고 계실 것”이라고 말했다. 할머니에게 한 마디를 부탁하자 그는 “할머니, 나 드디어 금메달 땄어! 나 태권도 시켜줘서 너무 고마워”라고 외쳤다.

 

2024파리올림픽 태권도 여자 57kg급 결승이 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렸다. 한국 김유진이 나히드 키야니찬데(이란)를 물리치고 금메달을 획득하고 있다. 파리=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183㎝의 큰 신장은 김유진의 강점이다. 긴 리치로 상대들을 더 먼저 타격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큰 신장으로 57㎏급에 나서려면 체중 조절 및 유지가 필수다.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참아야 했고, 먹고 나면 훈련으로 몸무게를 조절했다. 김유진은 “체중 조절을 시작하면 하루에 한 끼 정도 밖에 못 먹는다. 원래 훈련량이 많은 편이다. 조금 먹고 운동을 많이 하면서 컨디션을 유지한다”고 전했다.

 

이제 체중 조절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을 묻자 “삼겹살에 된장찌개요. 거기에 맥주까지. 올림픽을 마쳤으니 무조건 먹을 것이다. 삼겹살을 먹은 게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김유진의 금메달을 두고 ‘반전’이라고 한다고 전하자 그는 “반전 아니에요”라고 딱 잘랐다. 이어 “오늘 몸을 푸는데 몸이 너무 좋더라.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가장 좋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혼자 속으로 ‘일 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유진이 8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태권도 여자 57kg급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전날 남자 58㎏급에서 금메달을 딴 박태준이 기꺼이 훈련 파트너가 돼 준 것도 김유진에게는 큰 도움이 됐다. 김유진은 “태준이가 한쪽 손이 다쳤는데도 훈련을 도와줬다”며 “태준이가 ‘누나 별거 아니야. 긴장하지마’라고 말해줬다. 그 말이 크게 와닿았다”고 고마워했다.

 

‘언더독의 반란’, ‘반전 드라마’를 써낸 김유진에게 후배들에게 한 마디를 부탁했다. “올림픽 별 것 아니야. 너희들도 할 수 있어”


파리=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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