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계획 범죄 가능성’ 수사 중
주민들 ‘밤길 무서워’... 안전 대책 시급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림역 인근에서 또다시 참극이 벌어졌다. 30대 중국 국적 여성이 20대 한국인 여성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지갑 분실’이라는 사소한 오해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진 이번 사건은, 1년 전 이곳에서 발생한 무차별 칼부림 사건의 기억을 되살리며 주민들의 불안감을 고조시켰다.
#오후 2시10분경
17일 경찰 등에 따르면 14일 오후 2시10분쯤 신림역 인근 3층 건물에서 30대 중국 국적 여성 A씨가 20대 한국인 여성 B씨와 다투다 흉기를 휘둘렀다. 길이 20㎝의 과도로 B씨의 배를 찔렀고, B씨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B씨는 배에 4~5㎝ 깊이의 자상을 입어 출혈이 심했다.
인근 상인은 “큰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한 여성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경찰은 신고를 받고 즉시 출동해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A씨에게는 살인미수 혐의가 적용됐다.
#오후 2시18분
119 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병원 이송은 18분이 지난 오후 2시36분에야 시작됐다.
인근 옷 가게 직원은 “119가 와서 지혈도 해주고 했는데, 차에 태우고도 출발을 안 했다”며 “정부 시스템 문제라고 인적 사항 체크하고 그러더라. 119가 바로 출발할 줄 알았는데 죽었다니까 화가 난다”고 말했다.
소방 관계자는 “의료계 파업 등 여파가 없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출혈이 심해 현장 조치에 시간이 지연됐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오후 3시15분경
병원으로 이송된 B씨가 결국 사망했다. A씨의 혐의는 살인으로 변경됐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사건은 지갑 분실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전날인 13일 자신의 지갑이 없어진 것과 관련해 B씨를 의심했고, 이날 다시 만나 다투던 중 범행을 저질렀다.
인근 유흥주점을 운영하는 C씨는 “A씨가 평소 현금을 은행에 맡기지 않고 갖고 다녀서 ‘돈을 뭉텅이로 가지고 다닌다’는 소문이 파다했다”며 “술을 한 잔씩 한 상태에서 지갑이 사라지고, 피해자도 갑자기 도둑 취급을 받으니 다툼이 커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가 범행에 쓰인 흉기를 사전에 준비한 정황을 포착, 계획 범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한편 이번 사건으로 인근 주민들의 불안감은 커졌다.
지난해 7월21일 신림역 4번 출구 인근에서 조선(33)이 흉기를 휘둘러 20대 남성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치는 무차별 칼부림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1년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살인 사건에 주민들의 공포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사건이 발생한 건물 근처 식당에서 일하는 이모씨는 “지난해 사건 이후 한숨 돌리나 했더니 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유흥주점이 본격적으로 불을 켜는 오후 6~7시부터는 정말 무서워진다”고 토로했다. 3년째 이 지역에서 일하고 있다는 그는 “해마다 범죄가 늘어나는 것 같아 너무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인근 편의점에서 일하는 20대 박모씨는 “원래 야간에 일했었는데 싸우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시간대를 옮겨 일하고 있다”며 “이러다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하다”고 말했다.
8년째 이곳에서 거주하며 필라테스 학원을 운영하는 김모(49)씨는 “밤에는 잘 나가지도 않는다”며 “거리가 이렇게 위험한데 경찰이 순찰을 많이 하고 있다고 느끼진 않는다”고 강조했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현재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 중”이라며 “추가 수사를 통해 사건의 전모를 밝혀낼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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