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적관계 北, 공존적 대상 변화
최근 급변한 국제질서와 거리감
국내서도 대전략 변화 모색할 때
통상적으로 ‘전략’이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군사력을 운용하는 방책을 가리킨다. 그보다 넓은 차원에서 ‘대전략’ 혹은 ‘국가전략’이란 국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외교, 경제, 군사 등 국가가 가진 다양한 수단과 능력을 활용하는 방책을 지칭한다. 미국 예일대학의 폴 케네디 교수는 이러한 ‘대전략’ 개념을 사용하여 미국을 포함하여 대영제국이나 프랑스, 독일 등과 같은 역사상 강대국들이 자신들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어떻게 추구해 갔는가 하는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한국이 경제나 외교, 혹은 문화나 스포츠 분야에 이르기까지 국제적인 역할과 위상이 증대됨에 따라 ‘대전략’의 관점에서 한국을 주목하는 국제학계의 연구가 늘어나고 있다. 영국 킹스칼리지의 라몬 파체코 파르도 교수는 지난해 출간한 ‘한국의 대전략’을 통해 한국과 같은 미들파워 국가들에 대해서도 대전략 개념이 적용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그는 1988년 민주화 이후 한국이 나름의 대전략을 추구해 왔고, 그 결과 군사능력 증대, 외교와 무역의 확대, 한·미동맹 발전, 공공외교 및 소프트파워 능력의 강화와 같은 성과가 나타났다고 분석하였다.
파르도 교수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여타 한국학 연구자들도 한국의 대전략이나 국방정책 분야에 주목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 방위연구소의 고이케 오사무 박사는 지난 6월, 필자가 소속된 대학 연구소에서 한 발표를 통해 파르도 교수의 논지와 달리 자신은 한국의 대전략이 노태우정부 이후에도 한두 차례 변화를 보였다는 논점을 담은 연구서를 준비하고 있다고 소개하기도 하였다. 일본 캐논글로벌 전략연구소의 이토 고타로 연구원은 한국의 국방정책에 관한 단행본을 발간하면서, 한국 방위산업 정책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양상을 일본의 그것과 비교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파르도 교수나 이토 연구원과 같은 외국 연구자들이 한국의 ‘대전략’이나 외교 및 국방정책에 대해 분석하는 것은 그 자체로 한국 연구에 기여할 뿐 아니라, 향후 정책방향 모색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필자도 파르도 교수가 강조하고 있는 바와 같이 노태우정부 시기에 한국이 소위 ‘북방정책’을 표방하면서 이전 시기와 구별되는 대전략적 변화를 추구했다고 생각한다. 소련이나 중국과 같은 공산권 국가들과 적극적으로 국교를 수립했으며, 북한에 대해서도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밝히면서 남북기본합의서나 비핵화 공동선언 합의를 통해 공존적 관계를 구축하였다. 이런 대외관계 변화를 기반으로 한국은 북한과 더불어 유엔에 공동 가입하면서 국제적 존재감을 강화한 것도 사실이다. 파르도 교수가 분석하고 있듯이 가히 ‘대전략적 변화’의 추구였고, 이 시기에 추진된 대외정책 기조는 역대 정권들에 의해 대체로 견지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다만 미국과 러시아 등 강대국 간의 협력적 분위기가 농후했던 탈냉전기에 추진된 이런 대전략 추구가 2020년대 시점에서는 더는 실효성을 가질 수 있는가의 문제가 제기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지속 및 대만해협 등에서의 군사적 대립이 겹치면서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 간에 격심한 전략적 경쟁의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북한은 핵 능력을 고도화하면서, 한국과의 관계를 ‘적대적 교전 상태’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미 미국은 국가안보전략서를 통해 향후 10년 이상은 국제안보 질서의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글로벌 질서뿐 아니라 한반도 안보 질서에도 거대한 변화와 불안정성이 예상되는 가운데, 한국이 추구해야 할 새로운 대전략은 어떤 목표와 수단을 가져야 할 것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국제환경의 변화에 따른 대전략의 재설정은 필요하지만, 급격한 전략적 변화는 오히려 현상변경의 요인을 제공할 수 있다. 노태우정부 시기에 그러했던 것처럼, 국민적 공감대에 바탕을 둔 새로운 대전략의 방향 모색을 위한 공론의 장(場)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박영준 국방대학교 국가안보문제연구소장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