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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주 임신중절, 낙태인가 살인인가 [서아람의 변호사 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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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8-20 06:00:00 수정 : 2024-08-19 21: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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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유튜브 영상에 모두 경악
임신 몇주째부터 처벌 등 놓고
낙태죄 후속 입법 수년째 감감
하루빨리 사회적 합의 이뤄야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저에게도 첫 아이의 출산은 제 인생의 가장 큰 이벤트였습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임신중독 증상 때문에 긴급수술을 받고 예정일보다 한 달 더 빨리 아기를 낳게 되었기 때문에 더 그랬습니다. 당시 아기의 체중은 2.2㎏이었고, 폐가 성숙하지 않은 상태여서 폐성숙 주사를 맞고서 세상의 첫 공기를 마셨습니다. 인큐베이터에 들어갈 준비를 다 마쳐놓았지만, 다행히 자가호흡에 문제가 없고 분유도 잘 먹어서 저와 함께 병원에서 3박4일을 보내고 함께 조리원에 갈 수 있었습니다. 조리원에서 가장 작은 아기였지만, 그래도 눈도 금방 뜨고 머리카락도 듬성듬성 난 게 얼마나 신기했는지 아직도 그 기분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논란이 된 유튜브 영상 갈무리

임신 막달 태아의 신장은 약 30㎝, 체중은 2.0㎏에서 2.5㎏ 사이로, 성인과 같은 사지의 골격이 거의 완성됩니다. 근육이 발달하고 뇌의 크기가 커지면서, 바깥세상에서 스스로 체온을 조절할 수 있도록 피부 아래 지방을 축적해 주름이 펴지고 통통해집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태아는 머리를 엄마의 골반 쪽으로 두고 나갈 준비를 하면서, 외부 자극을 느낄 때 몸을 엄마의 자궁벽에 부딪치는 신경 작용을 합니다.

 

기술이 발달해서 요즘은 임신 28∼29주 차에 ‘3D 초음파’라는 것을 보는데, 흑백의 평면적인 상이 아니라, 풀컬러 입체로 구현된 태아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그 시기의 태아는 그야말로 쪼글쪼글한 아기 거북이 같아서 그 못생김에 많은 예비 엄마들이 충격을 받지만요. 그래도 이목구비가 명확히 보이고, 가끔은 아기의 표정이나 기분을 느꼈다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바깥세상 소음이 너무 시끄러운지 양손으로 귀를 막기도 하고, 초음파를 찍으려고 배를 흔들면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한다고요. 비록 정식으로 세상에 태어나기 전이라도, 한 생명이 일으키는 감동과 경이로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임신 36주 차에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다는 브이로그가 처음 올라왔을 때, 사람들은 전부 조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참 요즘은 별걸 다 콘텐츠로 만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경찰에서 그 영상이 거짓이 아니고 실제 상황이었으며, 영상을 찍은 유튜버와 중절 수술을 한 병원 원장을 살인 혐의로 입건했다고 발표하면서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대한의사협회에서는 문제의 병원 원장을 징계 심의에 회부하면서 ‘36주차 태아는 바로 출산해도 잘 자랄 수 있는 아기, 이건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할 의무가 있는 의사가 저지른 비윤리적 행위’라면서 강력한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의협 회장은 직접 본인의 페이스북에 이 천인공노할 일에 대해 사법부에 엄벌을 탄원하겠다고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심적으로는 분명히 살인이라고 생각되는 이 행위가 정말 법률상 살인으로 처벌받을 수 있을지는, 수사 추이를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우리나라 형법에 1953년부터 존재했던 낙태죄 조항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9년 4월,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바 있습니다. 누군가 특정 법률조항이 헌법위반인지 판단해달라고 헌법재판소에 심판을 청구하면, 헌법재판소는 여기에 대해서 세 가지 결정을 내릴 수 있는데, 바로 ‘합헌’, ‘위헌’ 그리고 ‘헌법불합치’입니다. 합헌 결정을 하면 법률은 그대로 유지되고, 위헌 결정을 하면 법률의 효력은 즉시 소멸하지만,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면 법률은 일단 유지는 되지만 헌법재판소가 촉구한 기간까지 새로운 입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법률의 위헌성은 인정되지만 당장 없애면 입법상 공백으로 큰 혼란이 초래될 것이 염려되는 경우 내리는 결정입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법률은 그 순간부터 사실상 ‘사문화’되어 해당 조항을 적용해 수사나 기소를 하지 않고, 이미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은 무죄 판결이 나오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낙태죄의 경우 입법 시한이 2020년 12월31일까지였지만, 아직 후속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임신중절을 처벌해야 하는지, 처벌한다면 임신 몇 주부터 처벌해야 하는지,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 등 예외 사유를 어디까지 둘지 제반 사항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부 여성 단체에서는 ‘낙태’라는 단어를 쓰는 것조차 극심하게 반대할 만큼, 여전히 임신중절 문제는 우리 사회의 열띤 논쟁 사안입니다.

 

이미 사문화된 낙태죄로 해당 유튜버를 기소할 수는 없기에, 경찰은 결국 형법 250조 ‘살인죄’를 들고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도 난점이 있습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태아가 자연인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시점은 ‘분만 시작’부터입니다. 만일 의사가 36주 된 태아를 산모의 배 밖으로 꺼낸 후 약물이나 처치로 사망하게 한 것이라면 명백히 살인이지만, 분만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 방식으로 뱃속에서 심정지시켰거나, 아니면 병원 의료 기록에 적혀 있는 것처럼 산모가 사산한 것이라면 이는 살인죄로 처벌할 수 없습니다. 해당 의사에 대하여 의사협회 내부 징계를 하는 정도에 그치고, 산모 본인은 무혐의를 받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보건복지부는 2019년 서울의 한 산부인과에서 34주 태아를 중절했던 의사가 살인죄로 유죄 판결받았던 사안을 바탕으로 이번 수사 의뢰를 진행했다고 밝혔지만, 2019년 사건과 이번 사건은 양상이 다릅니다. 2019년 사건은 산부인과 의사는 미성년자였던 산모의 모친으로부터 “강간을 당해 임신했던 것이니 낙태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제왕절개로 태아를 밖으로 꺼낸 후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자 미리 준비해 둔 플라스틱 양동이 속 물에 아기를 집어넣어 질식사시킨 후 의료폐기물인 것처럼 소각했던 일로, 죽은 태아가 ‘사람’에 해당한다는 것이 법률적으로 명백했고, 해당 의사는 살인죄, 사체손괴죄, 의료법위반죄로 징역 3년6월을 선고받았습니다.

 

서아람 변호사

이번 사건의 수사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와는 별개로, 임신중절 행위에 대한 입법 공백은 하루라도 빨리 해결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동안 임신 14주, 임신 24주, 전면 허용 등 여러 옵션이 검토되었지만, 그 어떤 것도 순조롭게 받아들여지지 못했습니다. 성공적인 해외 입법례가 있으면 본받기라도 할 텐데, 임신중절 문제에서만큼은 세계 어느 나라도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필리핀은 전면 금지, 프랑스는 12주, 스페인은 14주, 뉴질랜드는 20주, 미국은 낙태를 인정했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하면서 낙태 제한을 각 주에게 맡기는 결정을 하기까지 했는데요. 허용 범위를 넓힌 국가는 넓힌 국가대로 보수 단체의 격렬한 시위와 허용 범위 외의 임신중절이 불법화되어버린 것에 대한 반발에 시달립니다. 또 허용 범위를 좁힌 국가는 좁힌 국가대로 불법 시술이나 불법 약물 유통, 해외 원정 낙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다른 것도 아닌 생명이 걸린 문제인 만큼, 해결까지는 멀고 험난한 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더는 외면하고 미뤄둘 순 없습니다. 국민의 공분을 사는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모두는 아니더라도 사회의 대다수가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기준의 입법이 이루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서아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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