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세계 최강의 공격헬기로 평가받는 AH-64E 아파치를 추가 도입하는 것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안보협력국(DSCA)은 지난 19일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대외군사판매(FMS) 방식으로 한국에 35억 달러(약 4조6655억원) 규모의 AH-64E와 관련 물품을 판매하는 것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AH-64E 최대 36대, T700-GE-701D 엔진 최대 72대, 현대화된 목표 포착 지시 조준장치인 AN/ASQ-170 최대 36개, 롱보우 레이더로 불리는 AN/APG-78 최대 14대 등이 포함됐다.
한국군은 2012∼2013년 대형공격헬기 1차 사업으로 2017년 AH-64E 36대를 1조9000억원을 들여 실전배치했다.
이후 지난 2022년 11월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3조3000억원을 투입해 FMS 방식으로 아파치급 대형공격헬기를 구매하는 대형공격헬기 2차 사업 추진을 결정했다. 미 국방부의 발표는 2차 사업과 관련이 있다.
강력한 헬파이어 미사일과 롱보우 레이더를 갖춘 AH-64E는 우수한 공격헬기다. 하지만 전장 환경이 변화하는 상황에서 냉전 시절처럼 공격헬기를 대량으로 운용하는 방법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선 의문이 여전하다. 특히 지상 방공 전술과 무인 기술의 발달은 공격헬기가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한층 좁힌다는 지적이다.
◆전장 환경·전술 변화에 대응해야
AH-64E를 추가 도입한다는 대형공격헬기 2차 사업은 예전부터 논란이 적지 않았던 사업이었다. 지상군의 공세적 종심기동작전 수행을 보장하고 병력 위주의 지상전력에서 입체고속기동이 가능한 전력 구조로 전환하기 위한 사업이라는 게 방위사업청과 군 당국의 설명이다.
하지만 대형공격헬기가 추가로 필요하느냐에 대한 지적은 계속 제기됐다.
올해 초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24년도 예산안 심의결과에 따르면, 대형공격헬기 2차 사업의 2024년도 예산은 국회 본회의 심의에서 200억원이 삭감됐다. “대형공격헬기 도입이 최근 전쟁 양상에 부합하는지 여부 등에 대해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같은 지적은 그 전에도 반복됐다.
대형공격헬기 2차 사업이 처음 추진된 배경은 전임 정부 초기인 송영무 전 국방부장관 재임 시절 등장했던 신작전수행개념과 맞물려 있다.
당시 군은 이라크 전쟁 초기 미군이 신속하게 바그다드로 진격해서 이라크 수뇌부를 마비시킨 공세적 작전을 내세우면서 유사시 지상군을 신속하게 평양으로 진격시켜 북한 전쟁지도부를 무력화하고 전쟁을 최소 희생·최단 기간에 끝내겠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이같은 개념은 이라크에서 전면전보다 훨씬 길었던 미군의 안정화작전 등의 문제가 지적되면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신작전수행개념은 한미 연합작전계획에 반영되지 않았지만, 관련 전력 소요는 국방획득사업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한국은 아시아 최대의 AH-64 보유국으로 가는 길을 걷고 있다. 한번 시작한 방위력개선사업을 멈추거나 바꾸기가 매우 어려운 우리나라의 국방획득제도 특성 때문이다.
실제로 2000년 개발을 시작해 2008년 개발을 완료한 K-11 복합소총의 경우 2010년부터 탄약 폭발 등의 문제가 끊이지 않았으나, 사업이 완전히 중단되기까지는 10년이 걸렸다.
대형공격헬기 2차 사업과 관련, 전장 환경과 기술 및 군사전략 변화에 맞춰 방위력개선사업을 유연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매몰 비용이 있더라도 효과가 의심스러우면 과감한 조치를 취하는게 적절하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선 어떨까. 우크라이나 전쟁을 주목했던 미국은 차세대 공격 정찰헬기 사업을 취소하고 무인기와 유·무인 복합체계에 관심을 보이고 있고, 일본도 공격헬기를 후속 사업 없이 퇴역시키고 무인기로 대체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는 오래 전부터 조금씩 제기됐던 문제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촉발된 것으로 풀이된다.
냉전 시절 유럽에서 대규모 기갑부대가 맞붙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미국과 옛소련은 많은 양의 대전차미사일과 대구경 기관포, 로켓 등을 탑재하는 공격헬기가 유용하다고 판단했다. 미국 AH-64는 1차 걸프전에서, 옛소련 MI-24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맹위를 떨쳤다.
문제는 2003년 이라크전쟁서부터 드러났다. 2003년 3월 23일 밤 이라크 바그다드 인근 카르발라 일대에서 미군 AH-64D 29대가 이라크 방어선을 우회해 종심 타격 작전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라크군은 AH-64D의 이동 예상경로에 57㎜, 23㎜ 대공포와 AK소총, RPG 로켓 등을 배치, AH-64D가 나타나자 일제히 포화를 퍼부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1대가 격추됐고 28대가 피격됐다. 피격된 기체들은 수리와 로터블레이드 교체 등으로 4일간 전투불능이 됐다.
이후 이라크 무장세력은 대공포와 중기관총을 매복시켰다가 AH-64D가 나타나면 사격을 가하고 후퇴하는 전술을 썼다. 이로 인해 AH-64D가 추락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헬기의 역할에 대한 논란을 증폭시켰다. 우크라이나군 정보총국(HUR)은 러시아군이 개전 이래 최대 326대의 헬기를 잃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도 상당수의 헬기가 격추된 것으로 알려졌다. 휴대용 지대공미사일과 기관포 등으로 구성된 지상 방공망이 강력하게 구축된 상황에서 헬기 손실이 증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군 헬기는 지면과 매우 가까운 초저고도로 비행, 표적과 가까운 곳에서 로켓탄을 일시에 퍼붓고 나서 곧바로 현장을 이탈하는 전술을 쓰고 있다. 지상 방공망 위협을 감안한 조치라는 평가다.
◆아파치만 고집해야 하나
이라크전쟁에서 시작되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더욱 주목받은 대형 공격헬기의 효과 문제는 한국에서도 대형공격헬기 2차 사업을 둘러싼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다른 대안을 찾아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라크전쟁 당시 종심작전을 시도했던 AH-64D가 강력한 지상 방공망에 직면해 큰 피해를 입자 미군은 A-10 공격기, E-3 조기경보통제기, 조인트스타즈에 M270A1 MLRS 다연장로켓과 에이태킴스(ATACMS) 미사일까지 함께 동원해 이라크군을 공격했다. 이를 통해 AH-64D는 생존율이 상승했으나 작전 비중은 축소됐다.
한국군도 천무 다연장로켓과 전술지대지유도무기(KTSSM), K-9 자주포 등을 갖춘 기동군단과 사단이 있다.
이들 장비를 한데 묶어서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공군과의 연계를 강화하는 작전을 구사하면 AH-64E의 작전 비중을 낮출 수 있다. 한국군이 중시하는 합동성 증진에도 부합한다.
종심작전 이외에 AH-64E가 담당할 비정규작전이나 수송대열 호위 등의 임무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한 소형무장헬기(LAH)가 맡을 수 있다.
LAH는 천검 공대지미사일 4발과 20㎜기관포 등을 갖추고 있어 의심스런 지역을 정찰한 뒤 타격하는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근거리에서 무장요원만 공격할 수 있으므로 불필요한 인적·물적 피해를 초래할 위험도 전투기보다 낮다. LAH에 유·무인 복합체계를 갖추는 방안도 연구가 이뤄지고 있으므로 그 위력은 한층 강해질 전망이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대형공격헬기 2차 사업 소요를 재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예산집행의 효율화는 높아진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강력한 위력을 떨치고 있는 드론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군은 튀르키예산 바이락타르 무인공격기를 투입해 러시아군 기갑부대를 공격,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이후에는 다양한 종류의 자폭 드론을 개발, 러시아군을 타격하는 모양새다.
한국도 중고도무인정찰기(MUAV)를 실전배치한 직후 무인공격기를 만드는 방안이 제안된 바 있다. 육군이 드론과 로봇 기술에 주목하면서 업계에선 자폭드론 개발도 이뤄지고 있다.
이에 대해 군에서는 무인기와 공격헬기의 활동 영역은 서로 다르다는 주장도 나온다.
무인기가 미래전의 핵심 전력이기는 하지만, 무인기가 비행·통제·무장운용 등에서 자율화가 이뤄지려면 수많은 고려와 기술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므로, 당분간은 사람이 조종하는 헬기도 중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LAH와 더불어 주한미군 AH-64E까지 있는 상황에서 한미 연합작전능력을 활용하면 기존 36대로도 충분하다는 반박도 나온다.
첨단 무기를 대량 보유하는 것은 군사력 건설의 지름길 중 하나다. 하지만 예산이 부족한 상황에선 우선순위를 세밀하게 조정하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유연한 사고와 제도가 필수다. 수조원에 달하는 국민의 혈세를 지출하기에 앞서 신중한 고민이 먼저 이뤄져야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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