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때 귀신 빙의 주제 ‘설공찬전’ 소각 지시
요즘처럼 무더위가 지속되는 시기에는 뭔가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귀신들이 소환된다. 한여름 더위를 식혀줄 납량특집으로 ‘구미호’ 드라마나 ‘월하의 공동묘지’ 같은 영화가 단골처럼 상영되던 때도 있었다.
최근 흥행한 영화, ‘파묘’도 무덤 속 귀신 이야기를 소재로 한 것이었다. 시대를 초월하여 관심의 대상이 되는 귀신 이야기는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한다.
‘성종실록’의 기록을 보면, 성종이 비서실인 승정원에 “듣건대 호조좌랑 이두(李杜)의 집에 요귀(妖鬼)가 있다고 하는데, 지금도 있는가? 그것을 물어서 아뢰라”고 지시를 한 내용이 보인다. 이에 이두는 “신의 집에 9월부터 과연 요귀가 있어서, 혹은 나타나기도 하고 혹은 자취를 감추기도 하며 창문 종이를 찢기도 하고 불빛을 내기도 하며 기와나 돌을 던지기도 하는데, 사람이 부딪혀도 다치는 일은 없으나 다만 신의 아내가 살쩍에 부딪혀 잠시 다쳐서 피가 났습니다”고 귀신에 대한 목격담을 발하고 이어서, “종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사람과 말을 하기를 사람과 다름이 없고, 비록 그 전신은 보이지 아니하나 허리 밑은 여자의 복장과 방불한데 흰 치마가 남루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은 일찍이 보지 못하였고, 단지 밤에 두 번 사람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뿐입니다”고 보고하고 있다.
현종 때는 대비(효종의 왕비 인선왕후)가 거처하는 궁궐에 귀신이 나왔다고 하여 큰 소동이 벌어지는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영의정 정태화 등이 “근래 대내에 귀신이 요변을 일으키는 일이 있다고 하는데, 사실인지 모르겠습니다”고 보고하자, 현종은 “대비께서 거처하시는 통명전(通明殿) 근처에 정말 그런 일이 있다. 돌덩이가 날아오거나 의복에 불이 붙거나 궁인의 머리카락이 잘리는 등의 일이 자주 있는데, 궁인들이 거처하는 곳은 더욱 심하다. 이치로 미루어 보면 넓은 집이 오랫동안 비어 있었고, 또 이곳이 여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므로 음기가 많이 모여 요사스러운 재앙이 생긴 것 같다”고 하였다. 왕이 직접 나서서 궁궐에 귀신이 있는 것에 매우 불안해하는 모습이 실록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이에 정태화 등은 대비의 거처를 옮길 것을 제안했고, 결국 대비는 경희궁으로 가게 되었다.
‘중종실록’에는 귀신을 주제로 한 소설 ‘설공찬전’이 많은 사람을 현혹시킨다는 이유로 이를 읽지 말도록 하고 소각을 했다. “‘설공찬전(薛公瓚傳)’을 불살랐다. 숨기고 내놓지 않는 자는, 요서은장률(妖書隱藏律:괴이한 책을 숨긴 형률)로 치죄할 것을 명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설공찬전’은 죽은 설공찬의 혼령이 사촌 동생 설공침에게 들어가 일어나는 귀신 이야기가 주제인데, “저승은 바닷가로되 매우 멀어 여기서 40리로되 우리 달림은 하도 빨라 여기서 오후 8시에 나서면 12시에 들어가 오전 2시 성문이 열리면 들어간다 하고, 우리나라 이름은 ‘단월국’이라 하고 중국과 제국(諸國)의 죽은 사람이라, 이 땅에 모인 사람이 하도 많아 수를 세지 못한다”고 하여 16세기 당시에도 지옥은 만원이라는 기록이 흥미롭다. ‘설공찬전’의 저자는 채수(蔡壽)라는 학자였는데, 사회지도층에 있는 인사가 귀신 이야기를 써서 사회를 혼탁하게 한다는 이유로 금서로 지정되었다. 차라리 귀신이 등장하여 무더위를 확 식혀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나는 계절이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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