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기획단장 출신 온건파…대형 공공병원 경영이력 無
수면마취 성범죄 의사 등 ‘의료인 면허 취소법’ 반대투쟁
‘간호사법’ 반대 투쟁도 주도…단식 농성 중 병원 이송
경기도 “의협 이끌어 적임자 판단…의료서비스 등 혁신”
보건노조 “김 지사, 공공병원 기본 이해 있나…탁상행정”
“의사 이익만 대변…리더십·전문성 갖춘 인사 심사숙고”
도의료원 6곳 지난해 모두 적자 전환…인력부족 등 위기
이달 도의회 인사청문…道 기관장 인사청문 ‘무패’ 깨지나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안에 반발해 사퇴한 이필수 전 대한의사협회장이 6개 대형 공공병원을 책임지는 경기도의료원장에 내정됐다.
의협 국회 총선기획단장 등을 거치며 꾸준히 정치성향을 드러내 온 이 내정자는 회장 재임 기간 ‘금고 이상 의료인 면허 취소법‘과 ‘간호법’ 제·개정에 강하게 반발하며 단식 등 반대 투쟁을 주도한 바 있다.
이 중 의료인 면허법의 경우 지난해 11월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판도가 바뀌었다. 개정 전까지 의료인이 성범죄 등으로 처벌을 받더라도 의사면허 유지가 가능했으나 법 개정 이후 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집행유예 및 선고유예 포함, 고의성 없는 의료사고로 인한 업무상 과실치사상 제외)을 선고받으면 면허가 취소되도록 했다.
이는 면허 취소 조항이 ‘의료 관련 법령 위반’에서 ‘모든 범죄’로 확대된 때문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강간·강제추행’, ‘불법촬영’, ‘통신매체 음란행위’ 등 성범죄 혐의로 검거된 의사는 793명(한의사·치과의사 포함)으로, 연간 159명꼴이었다. 하지만 의협이 반대하던 법 개정 전까지는 의사면허 유지가 가능했다.
◆ “김동연 지사 공공병원 마인드 가졌는지 의심”…인사청문 난항 예고
2일 경기도 등에 따르면 이날 이필수 전 의협회장이 도의료원장에 내정된 사실이 전해지면서 도 안팎에선 내홍이 일고 있다. 도는 이날 이 내정자에 대해 도의회에 인사청문을 요청했다.
보건의료노조 경기본부는 성명을 내고 “김 지사가 공공병원에 대한 마인드를 가졌는지 의심이 든다”며 이 내정자의 과거 경력과 행보를 들춰냈다. 김 지사는 임원추천위원회를 거쳐 올라온 여러 명의 후보자들 가운데 이 내정자를 낙점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 관계자는 “지역주민에게 사랑받고 신뢰받는 의료원으로 거듭나기 위해 양질의 의료서비스 등 혁신이 필수”라며 “의사협회를 이끈 이 내정자를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내정자는 경기도의료원과 같은 대형 공공 의료기관을 경영한 경험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과거 의협 회장 시절 공공의대 설립 반대와 의대정원 증원 반대, 간호법 제정 반대에 앞장서며 의사들의 이익을 집중적으로 대변해왔다.
전남 여수 출신인 그는 전남대 의대를 졸업한 뒤 흉부외과 전문의로 활동했고 전남의사협회장(제38·39대)을 지냈다. 이어 의협에서 중소병원살리기 특별위원회 위원장, 코로나19 병·의원 경영지원 특별위원회 위원장,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장, 21대 국회 총선기획단장, 부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의협 회장 당선 때는 ‘온건파’로 알려졌으나 의료인 면허 취소법과 간호사에게 의료권 일부를 허용하는 간호법 반대 투쟁을 주도하며 야당 정치인이나 다른 직역의 의료 종사자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당시 의협 등 의료계는 김 지사의 소속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주축이 된 국회의 간호법 제정 등을 두고 ‘정략적 추진’이라고 비난했다.
◆ ‘의료인 면허 취소법’ 반대…개정 전까지 성범죄에도 면허 유지
또 의료인 면허법에 대해선 의사 중심의 의료체계를 흔들 것이라며 반대했다.
하지만 면허법의 경우 지난해 11월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의료인이 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면허가 취소되도록 바뀌었다.
보건의료노조 경기본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경기도의료원장은 단순한 의료 경영자가 아닌,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감을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며 반발했다.
이어 “이 내정자는 공공병원 운영 경험이 충분하지 않고 의협 회장으로서 의사들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의사의 관점에서만 역할을 해 왔다. 김 지사가 공공병원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가진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지사의 이 내정자 결정은 현장의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탁상행정”이라며 “경기도는 공공병원의 본질에 맞는 리더십과 전문성을 갖춘 인사를 다시 한 번 심사숙고해 도민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노조의 반발은 경기도의료원 6개 병원이 시설 노후화와 인력부족, 경영난으로 ‘삼중고’를 겪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이목을 끈다.
현재 경기도의료원은 입원환자가 코로나19 사태 이전의 62% 수준에 머물며 위기를 맞고 있다. 병상가동률도 절반을 밑돈다.
경기도의회 의뢰로 진행된 ‘경기도의료원 운영 정상화 연구’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경기도의료원 산하 6개 병원의 외래환자 수는 2019년 113만6000명에서 2023년 71% 수준인 80만1000명으로 급감했다. 입원환자가 병상 절반 이상을 채운 곳은 이천병원뿐이었다.
2019년에는 6곳 중 4곳이 흑자 운영(보조금 포함)을 했지만, 지난해에는 6곳 모두 적자로 돌아섰다.
◆ ‘민주당’과 간호법 놓고 극한 대립…인사청문 ‘무패’ 깨지나
일각에선 이 내정자 낙점이 윤석열 정부의 즉흥적 의료정책과 땜질식 처방에 맞선 김 지사의 반격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간호법 처리 등을 두고 야당인 민주당과 극심한 갈등을 빚었던 이 내정자 낙점은 민주당 안에서도 의외라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김 지사는 민주당 소속이다.
이 내정자에 대한 도의회 인사청문회는 관련 조례에 따라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이달 임시회(2~13일) 기간에 진행하게 된다. 앞서 민선 8기 들어 김세용 경기주택도시공사(GH) 사장 등 19개 경기도 산하 공공기관장은 도의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과정에서 단 한 명도 낙마하지 않았다. 이 같은 ‘무패’ 기록이 이 내정자에게도 해당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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