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 속 의료 공백이 장기화되며 응급실을 찾아 헤매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순간접착제를 안약으로 착각해 실명 위기에 처한 여성이 20여곳의 응급실에서 모두 퇴짜를 맞은 사례도 전해졌다.
4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가정집에서 “안약인 줄 알고 눈에 순간접착제를 넣었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구급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하니 40대 여성 A씨가 한쪽 눈을 붙잡은 채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공개된 당시 현장 영상을 보면 A씨 눈꺼풀은 달라붙어 있었고, 살짝 보이는 눈 안쪽은 염증으로 검붉게 부어오른 상태였다. 실명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위급한 상황에 구급대원들은 급히 응급조치를 한 뒤 응급실을 알아보기 위해 전화를 돌렸다. 그러나 서울, 경기, 인천 등 20곳이 넘는 병원에 전화했지만 끝내 받아주겠다는 곳은 없었다.
결국 구급대원들은 1시간이 넘도록 이송할 병원을 찾지 못하고 A씨에게 “스스로 병원을 찾아봐야 한다”고 전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병원 측이 거절한 경우 구급대 측에서 해당 병원에 강제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A씨는 이틀이나 지난 평일에서야 치료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정부는 비상진료 대응 관련 브리핑을 열고 최근 응급실 운영 차질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2월 전공의 집단 이탈에서 비롯된 문제로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한 상태라고 재차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비상 진료 체계에 문제가 없다”고 못 박은 것과 연장선상인 발표다.
그러나 현장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로 골든타임을 놓치는 등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는 게 이들 불만이다. 김성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서울지구 구급국장은 지난달 30일 응급의료 비상사태 긴급 간담회에서 “최근 뇌졸중 환자를 상급종합병원으로 이송하려고 했지만, 입원 수속이 진행되지 않았다. 전화는 10통을 해도 받지 않았고, 의료진에게 계속 통증을 호소하니 50분간 현장에 계셨다”며 “직간접적으로 이런 일들이 많이 생긴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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