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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호의플랫폼정부] 정부가 민첩해진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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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9-04 23:37:45 수정 : 2024-09-04 23:3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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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부처 현안 많아 종합·협력적 시스템 구축 시급
과학적 행정 수립·정책 시뮬레이션 역량 키워야

윤석열정부 출범 초기 국민에게 한 약속 중 하나가 바로 민첩한 정부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민첩한(agile) 정부란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정부를 지칭한다. 그러나 신속한 것도 좋지만 제대로 대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구축하면 정부가 민첩해진다는 말은 하지 말자. 정부가 민첩함에 진심이었다면 단순히 디지털 기술의 적용과 데이터 통합을 기반으로 하는 행정서비스 제공의 플랫폼화만을 이야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가 신속하게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디지털 기술의 적용과 필요한 데이터의 활용은 수단에 불과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담당 부서의 적극적인 문제 해결 노력은 물론이고, 특히 관련 부처들의 협력이 신속하며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가 대응해야 할 문제는 단일 부처가 해결할 수 없는 다부처 복합적인 성격을 지니는 이른바 사악한 난제(wicked problems)이기 때문이다.

전기자동차 사고 대응만 보더라도 국토부 한 부처만의 문제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마치 정부는 전기차 확산에만 몰두했지, 그 이후의 문제는 생각해 보지도 않은 것 같다. 단선적 사고로 21세기 난제에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주택 문제 역시 국토부만의 사안보다는 다양한 시각에서 종합적인 분석과 대응이 주문된다. 한국에서 주택은 단순히 주거의 문제를 넘어 교육, 문화, 자산 증식 등 다양한 요인이 섞여 있는 난제가 이미 되었기 때문이다. 의대 증원 발표 이후, 지지부진한 현 상황에 대한 정부 대응은 말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에 기댈 수도 있으나 그 시간 속에서 불편과 고통을 겪는 국민은 정부를 어떤 모습으로 기억할지 걱정된다.

결국, 대증요법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허겁지겁 대응하는 자세로는 민첩하게 정책 문제를 인식하고 제대로 해결하는 정부로 탈바꿈하기 어렵다. 정부가 민첩해지길 진심으로 원한다면 몇 가지 짚어볼 사항이 있다. 무엇보다도 정부의 일하는 방식이 사람 중심, 단일 부처 중심에서 종합적이며 협력적인 시스템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여러 원인이 얽혀있는 사악한 난제를 다각도에서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예측하며 적합한 대응책을 신속히 그리고 제대로 마련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추측이나 관행 또는 주관적 경험이 아닌 근거를 기반으로 하는 과학적 행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는 이미 행정의 과학화를 위하여 데이터기반행정법을 제정하였다. 그러나 공무원들이 업무수행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와 데이터를 신속하게 탐색하고 활용하는 업무수행은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객관적이며 증거기반 행정이 법을 제정했다고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행정의 근거는 법제도이나 그런 행위를 하는 실제 모습과 과정은 개개인의 속성, 특히 조직 문화에 직접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끝으로 모든 정책 문제를 사전에 예측하고 대응하라고 정부에 주문하는 것은 억지이며 그럴 수도 없다. 다만 부처마다 특정한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려고 할 때 중요한 문제는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예측을 어느 정도 깊이와 폭까지 할 수 있느냐, 즉 정책 시뮬레이션 역량이 곧 정부 역량이며 민첩한 대응의 초석이 된다. 과연 우리 정부는 정책 시뮬레이션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지 궁금하다.


오철호 숭실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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