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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딸아이 하교 시간에 교문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다가 문득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싶었다. 아이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보통은 2학년쯤 되면 학교도 학원도 혼자 다닌다. 독립심 강한 아이는 1학년 때부터 혼자 다니기도 한다.

나도 딸아이에게 일찌감치 독립심을 심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녀석이 허구한 날 학교 가기 싫다고 투덜대는 데다 간신히 등교시키면 우산이나 필통 따위 자잘한 소지품은 말할 것도 없고 책가방이며 겉옷이며 심지어 신발까지 잃어버리고 귀가하기 일쑤라 불안한 마음에 따라다니다 보니 어느새 3학년이 된 것이었다.

교문을 빠져나오는 아이에게 대뜸 선언했다. 너도 이제 3학년이니까 등하교 혼자 해. 사실 별 기대 없이 한 말이었다. 이전에도 몇 번 이야기했는데 그때마다 녀석이 한사코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이가 그러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정말이지? 앞으로 너 혼자 다니겠다는 거지? 아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오늘 아침, 처음으로 아이 혼자 등교하기로 했다. 나는 현관문 앞에서 아이를 배웅했다. 잘 다녀와! 그런 다음 곧바로 미행에 나섰다. 들키지 않으려고 첩보영화에서처럼 아이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적당한 지형지물이 나타날 때마다 몸을 숨겨가며 뒤를 밟았다. 의외로 녀석은 한눈팔지 않고 부지런히 걸어 금세 교문 앞에 이르렀다. 그리고 교문을 지나치더니 길모퉁이를 돌아 순식간에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세상에. 쟤가 지금 어딜 가는 거지. 나는 일정 거리고 뭐고 부리나케 그쪽으로 뛰었다.

아이는 학교 근처 문방구에 있었다. 싸구려 불량식품이 진열된 매대 앞에서 한참을 고른 끝에 무엇인가를 샀다. 그리고 맞은편 공터로 가서 쪼그리고 앉더니 문방구에서 산 것을 제 입에도 넣고 땅바닥에도 내려놓았다. 길고양이 주려는 것일까. 전봇대 뒤에 숨어서 살펴보니 그것은 어포였다. 곧 교문이 닫힐 시각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천하태평이었다. 설마 결석하려는 것일까. 이쯤에서 나서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어쩐지 아이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계속 지켜보기만 했다. 이윽고 녀석이 일어났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닫히기 직전의 교문을 통과했다. 결과만 보면 첫 홀로 등교에 성공한 셈이다. 그런데 대견하기는커녕 걱정이 태산이다. 당장 내일 아침 등교는 또 어떻게 해야 할까.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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