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노퓨달리즘/ 야니스 바루파키스/ 노정태 옮김/ 21세기북스/ 2만4000원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클라우드(인터넷 기반 자원 공유) 서비스와 연결된 휴대용 디지털 기기 없이는 가벼운 일상도 보내기 어려운 시대다. 하지만 이런 디지털 혁신이 우리 노동의 가치와 자본주의 체계를 몰락시키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전 그리스 재무장관이자 세계적 경제학자인 저자는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죽었다”고 말한다. 세계 경제를 지탱해 온 자본주의 체계가 지난 20년간 빠르게 다른 무언가에 의해 대체되었는데, 그 무언가는 바로 새로운 유형의 돌연변이 자본이라고 하면서다. 아울러 이 자본은 구글, 아마존, 애플, 테슬라, 메타(페이스북) 등 거대 정보기술(빅테크) 기업들이 만들어낸 ‘클라우드 자본’이라고 했다.
클라우드 기반의 빅테크 기업들은 우리가 무엇을 보고, 읽고, 구입하고, 누구를 어디서 만나는지 등 각종 정보를 모으고 거래한다. 클라우드 자본이 자본주의를 죽인 지금 시대를 ‘테크노퓨달리즘(Technofeudalism)’ 시대로 규정한 저자는 빅테크 기업들을 테크노퓨달리즘 시대의 지배계급, 즉 영주로 지목했다. 테크노퓨달리즘이란 각각 기술과 봉건제도를 의미하는 ‘테크(Tech)’와 ‘퓨달리즘(feudalism)’을 합친 신조어로 ‘기술 봉건주의’를 의미한다.
책에 따르면, 거대한 자체 플랫폼에 영지를 꾸린 빅테크 기업들은 전 세계 이용자들을 자발적인 정보 자료 생산 농노로 만들고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다. 이 시대 많은 사람은 개인 정보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블로그 등에 공짜로 올리고, 빅테크 기업들이 짜놓은 알고리즘에 자신의 선택까지 조종당하며 살아간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대부분 ‘공짜 데이터 노동자’가 돼 클라우드 자본의 배를 불려주고 있다.
책은 자유 경쟁을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를 죽이고, 개인을 공짜 노동하는 ‘데이터 노예’로 전락시켜 버린 빅테크 실상을 낱낱이 파헤친다. 사람들의 정보를 인질로 잡은 디지털 플랫폼과 냉혹한 알고리즘, 이를 통해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빅테크 기업들이 소환된다. 클라우드와 플랫폼 공유화 및 이용자들의 연대를 제안하기도 하는 등 클라우드 자본에 대처하는 지침서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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