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력이 돋보이는 ‘원팀’ 지도력도, 색깔이 드러나는 전술적 역량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잡음 속에 출항한 홍명보호가 국제축구연맹(FIFA) 세계 랭킹 73계단이나 낮은 팔레스타인을 안방으로 불러 졸전 끝에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하지 못했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B조 팔레스타인과의 1차전서 0-0으로 비겼다.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을 노리는 한국은 최종 예선 첫 경기부터 아쉬운 결과를 얻어 전망을 어둡게 했다.
화끈한 승리가 절실한 경기였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준결승 탈락 이후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이 경질됐고, 이후 외국인 사령탑 선임에 집중했던 대한축구협회는 6개월 만에 돌연 ‘국내파’ 홍명보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실패(1무 2패 조별리그 탈락) 경험이 있는 홍 감독이 키를 쥐자, 공정성 논란이 일어 축구팬들의 공분을 자아냈다. 이날 경기장을 가득 메운 홈팬들도 홍 감독이 화면에 잡힐 때마다 야유를 쏟아냈다. 언제나 매진되던 상암 구장도 5만9579명이 찾아 6만명을 넘기지 못했다. 부정적인 분위기를 뒤엎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완벽한 승리를 넘어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는 일뿐이었다. 더구나 이날 경기 상대인 팔레스타인은 FIFA 순위가 96위로, 한국(23위)과 격차가 큰 데다가 이스라엘과 무력 충돌로 국내 정세가 불안해 큰 점수 차 승리가 예상됐다.
여론을 의식한 듯, 홍 감독은 안정적인 라인업을 내세웠다. ‘캡틴’ 손흥민(31∙토트넘), 김민재(28∙바이에른 뮌헨), 이강인(23∙파리 생제르맹) 등 다수 유럽파를 내세웠다. K리그1 울산 HD 감독 시절 지휘한 김영권(34), 정우영(34), 주민규(34∙이상 울산) 등 노장들을 배치했다. 반면 ‘고교생 천재’ 양민혁을 비롯해 황문기(이상 강원), 최우진(인천), 이한범(미트윌란) 등 첫 태극마크를 단 4명 중 선발로 나선 황문기를 제외하고 3명이 명단에서 제외됐다. 북중미 월드컵을 겨냥해 사전 작업이 필요한 세대교체와는 거리가 먼 라인업이었다.
그런데도 대표팀은 전반부터 졸전을 펼쳤다. 유효 슈팅도 1-1로 팽팽했다. 뚜렷한 전술적 색채를 드러내지 못한 채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전반 21분 팔레스타인은 프리킥 상황서 헤더 슛으로 골망을 흔들었으나, 오프사이드가 선언돼 득점이 취소됐다. 한국의 첫 유효 슈팅은 전반 40분에서야 나왔다. 중원에서 공을 잡은 이강인은 황인범과의 패스 플레이를 통해 수비수 4명을 제친 뒤 강력한 오른발 슈팅을 날렸지만, 골키퍼 선방에 막혔다.
홍 감독은 후반 시작과 동시에 주민규를 빼고 오세훈(마치다)를 투입했다. 후반 12분엔 ‘황소’ 황희찬(28∙울버햄프턴)을 투입하며 득점 사냥을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이강인은 홍명보호 마수걸이 골을 작성하기 위해 분투했다. 후반 27분 자신이 얻은 페널티 박스 앞 프리킥 찬스서 직접 차 골대 구석으로 공이 향했지만, 골키퍼 선방에 막혔다. 후반 37분엔 이강인의 크로스에 이은 오세훈의 강력한 헤더슛도 가로막혀 골망을 가르진 못했다. 손흥민은 후반 41분 골키퍼를 제치고 빈 골문에 슈팅을 시도했지만, 크로스바를 때려 득점에 실패했다. 공격진의 아쉬운 결정력이 경기 내내 이어졌다. 오히려 후반 추가 시간 팔레스타인에게 역습을 허용해 위기를 맞이했지만, 조현우가 선방해 실점을 모면했다. 답답한 경기 양상에 경기 종료 휘슬이 다가올수록 붉은악마의 “정몽규(축구협회장) 나가!” 연호 소리는 더 커지기만 했고, 홍 감독을 겨냥한 야유도 높아졌다. 첫 경기에 승리하지 못한 홍명보호는 이제 원정길에 올라 10일 오만과 3차 예선 2차전을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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