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임생 대한축구협회 이사가 논란 속에 눈물까지 훔치며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배경으로 밝힌 ‘라볼피아나’. 그 라볼피아나는 국제축구연맹(FIFA) 96위 팔레스타인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졌다. 안방에 불러 결과는 0-0. 울산 HD 노장들을 앞세운 ‘의리 축구’ 앞에서 홍명보식 라볼피아나는 위협적이지 못했다. 볼을 지키는 안정감도, 빠른 전개를 위한 기동력도 실종됐다.
지난 7월 이 이사는 홍 감독을 깜짝 발탁했다. 그는 선임 배경을 설명하며 홍 감독의 ‘전술적 역량’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이사는 “대한축구협회 철학과 게임모델을 고려했을 때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울산의 전술에 주목했다. 빌드업 시 라볼피아나 형태로 운영하고, 비대칭 백3 변형을 활용하며 상대 뒷공간을 효율적으로 공격하고 상대의 장점을 잘 살려 라인브레이킹을 하는 모습이 울산에 있다. 측면 콤비네이션 플레이, 크로스 공격도 돋보이고 지속해서 경기 템포를 살려 공수 밸런스를 유지하고 기회 창출을 하는 모습도 좋았다”고 밝혔다.
라볼피아나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활용한 빌드업 전술 중 하나다. 수비형 미드필더가 센터백 사이로 내려서며 변형 3백을 만드는 형태다. 자연스럽게 좌우에 배치됐던 풀백은 공격적으로 전진해 공격 숫자를 늘릴 수 있게 된다.
팔레스타인전도 홍 감독은 이를 구사하려 했다. 핵심은 센터백 김영권(울산),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황인범(페예노르트), 정우영(울산)이다. 빌드업 시 수비형 미드필더인 정우영이 김영권-김민재 라인 사이로 내려가, 공격진으로 볼을 운반하는 시작점이 됐다. 또 김민재와 김영권도 빌드업에 힘을 보태 정교한 발끝이 중요했다. 그런데 정작 두 명이 울산의 노장이다. 후방이 ‘공격의 시발점’이 되어야 하는 만큼 패스미스는 결코 나와선 안 된다. 그런데 경기 시작부터 실수가 이어졌다.
중원에서의 미숙한 볼 처리로 인해 결국 좌우 풀백인 설영우(즈베즈다), 황문기(강원)가 수습하기 위해 급히 후방을 지키는 모습이 자주 연출됐다. 후방부터 공이 매끄럽게 전개되지 않으니, 양 사이드 공격도 원만하지 않았다. 결국 전술 의도와 반대로 답답함을 느낀 손흥민과 이강인 등 좌우 측면 공격수들은 공을 받기 위해 중원 및 수비진까지 내려와 개인 기량을 통해 공을 운반해야 했다.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나선 ‘베테랑’ 주민규(울산)는 홀로 수비진에서 고립돼 공 터치도 쉽지 않았다. 라볼피아나 자체가 효과를 드러내지 못하면서 결국 뚜렷한 색채가 없는 이강인의 돌파에 의존하는 ‘해줘’ 축구로 변모하는 모습이었다. 어렵게 얻은 찬스도 공격진의 결정력이 아쉬워 무득점에 그쳤다. 10년 만에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그라운드로 돌아온 홍 감독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96위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홈에서 0 대 0 굴욕적인 무승부에 그쳤다. 첫 경기부터 자신이 선임된 이유 중 하나였던 ‘전술 능력’을 전혀 입증해 내지 못했다. 또 가장 강력한 장점으로 꼽힌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원팀 정신’도 대표팀의 허술한 조직력 속에 드러나지 않았다.
기대 이하의 졸전을 펼친 홍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였다. 홍 감독은 경기에 대해 “전체적으로 전반과 후반이 다른 양상이었다. 전반이 우리 생각보다 썩 좋지 못했고, 후반에 개선됐으나 몇 번의 득점 기회가 왔을 때 살리지 못해서 아쉽다”고 평가했다. 또 이날 경기 내내 이어진 홈팬들의 야유에 대해선 “팬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제가 앞으로 견뎌 나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명보호는 이제 오만으로 원정을 떠나 10일 북중미 월드컵 3차 예선 B조 2차전을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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