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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의역사저널] 부활 꿈꾸는 中 서안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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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9-09 23:37:20 수정 : 2024-09-09 23:3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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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개 왕조가 도읍 삼은 역사·문화의 도시
신라 김춘추가 나당동맹 체결 성공한 곳

지난 8월 마지막 주에 중국의 고도(故都) 서안을 다녀왔다. 궁궐과 종묘에서 자원하여 해설을 하시는 ‘궁궐 길라잡이’ 선생님들과 함께 한 답사였다.

서안은 중국에서 가장 많은 왕조가 도읍으로 삼았던 만큼 많은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도시였다.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인 진(秦) 나라를 비롯하여 한(漢), 수(隨), 당(唐) 등 13개의 왕조의 수도가 서안이었다.

서안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유적지가 많다. 진시황릉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1974년 발견된 병마용갱(兵馬傭坑)을 비롯하여,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를 위해 만들어 준 온천 궁궐 화청궁(華淸宮), 말 그대로 비석이 숲처럼 많은 비림(碑林) 박물관, 당 고종과 여걸 측천무후가 합장된 건릉(乾陵), 명나라 때 건립되어 현재에도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서안 성벽 등 서안은 중국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서안이 소속되어 있는 섬서성(陝西省)은 현재 국가 주석인 시진핑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시진핑은 고대 비단길의 중심으로 서양과의 교역의 중심지인 서안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면서 당 제국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2000개가 넘는 비림 박물관의 비석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실크로드 문화의 흔적이 남아있는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였다.

야간에는 인파로 가득 찬 공연장에서 ‘실크로드’를 주제로 한 공연을 보았는데, 낙타와 늑대(늑대를 닮은 개) 등이 무대와 관객 속으로 뛰어다녀서 깜짝 놀랐다.

공연에는 한글 자막이 보였는데, 첫 부분에 시진핑이 이 공연을 만들도록 지시한 내용이 나왔다. 시진핑이 서안 홍보에 역점을 두고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국가 주석의 고향이란 점도 영향을 미치면서 서안은 중국에서도 각 지역에서 이곳을 찾는 인파로 넘쳐났다. 무더위와 인파의 숲속에서 긴 기다림 끝에 유적들을 만나 볼 수 있었지만, 병마용갱 1, 2, 3호관과 화청궁, 무슬림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 회족(回族) 거리 등에서는 겨우 사진 몇 장만을 찍고 이곳을 빠져나왔다.

서안은 우리 역사 속 인물이 이 땅을 밟은 곳이라는 점에서도 역사적 의미가 크다. 신라의 김춘추(金春秋)는 648년 당나라 수도 장안(서안은 당나라 때는 장안이라 하였다)을 찾아가 당 태종을 만나 나당동맹을 맺는 데 성공하였다.

나당동맹은 신라가 열세에서 벗어나 삼국통일의 초석을 마련한 사건이었다. 당 고종이 파견한 군대는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에 큰 역할을 하였다.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은 당나라군에 체포되어, 장안으로 끌려갔다. 의자왕과 태자, 왕자, 대신, 장수와 백성 등 1만명 이상이 당나라의 포로가 되었고, 의자왕은 당나라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당나라 희종 때 대규모 농민 반란인 황소(黃巢)의 난이 일어나자, ‘황소를 토벌하는 격문’을 지어 반란의 진압에 일조를 한 인물이 있었다.

당나라에서 외국인을 위해 치르는 빈공과(賓貢科)에 급제하여 장안에 있었던 신라인 최치원(崔致遠)이었다.

우리 궁궐을 더 잘 설명하기 위해 참여한 ‘궁궐 길라잡이’ 선생님들은 화청궁에서 양귀비 모습을 따라 하고, 서안의 테마파크 ‘대당부용원(大唐芙蓉園)’에서는 부채춤을 추기도 했다. 이분들과 함께 한 답사여서 더욱 의미가 있었던 서안 기행이 되었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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