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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 “협상 통한 北 비핵화 실패… 실질적 군사 대비태세 중요” [세계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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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9-10 19:54:45 수정 : 2024-09-10 21:4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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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은 처음부터 핵개발 포기 의사 전무
美 제재 지연수단으로 협상 응했을 뿐
공허한 애착 접고 대응조치 집중 필요

자체 핵무장론은 지극히 편의적 발상
南 재래식 군사력 對北우위 확대하고
이스라엘 수준 미사일 방어망 갖춰야

신냉전 시대 중도 노선은 모두에게 敵
일관된 원칙 없는 후진국형 외교 문제
대중·대러 관계 상호주의 관철 바람직

11월 미국 대선 전후 북한이 7차 핵실험 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같은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신냉전’ 체제로 재편되는 전환기 국제정세 속에서 북한 핵 위협은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 정부는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한 미 핵우산 강화로 북핵 위협에 대응하고자 하지만, 국내외 안팎에선 자체 핵무장론, 전술핵 배치 등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정통 외교관 출신의 북핵 전문가인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을 10일 서울 종로구 세종연구소에서 만나 한국의 북핵 전략, 핵무장, 대북제재와 전환기 한국 외교의 과제 등에 대한 의견과 전망을 들어봤다. 이 이사장은 “(우리가) 30년간 추구해 온 ‘협상을 통한 북한의 비핵화’라는 외교적 명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은 북한 비핵화에 대한 공허한 애착을 접고 대응조치 강구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또 한국 외교의 문제점으로 “일관된 원칙도 철학도 없이 공허한 이익을 따라다니는 후진국형 외교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이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이 10일 서울 종로구 세종연구소에서 가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북핵 전략과 대북제재, 대중·대러 외교를 비롯한 전환기 한국 외교의 과제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최상수 기자

―북핵 위기 30년 한국 외교를 평가한다면.

“협상을 통해 북한의 핵무장을 저지하려던 한국 외교의 총체적 실패였고, 북한 입장에서는 온갖 외교적 술수를 동원해 핵무장을 관철한 커다란 외교적 승리였다. 북한은 처음부터 협상을 통해 핵 개발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 미국의 제재와 군사 조치를 지연하려는 수단으로 협상에 응했을 뿐이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핵무장 의지를 과소평가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7년 핵 무력 완성을 공식 선언할 때까지 기약 없이 외교적 협상에만 매달려 실패를 자초했다.”

―앞으로 우리의 북핵 전략에 대해 제언한다면.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더 이상 국가 운명을 맡겨서는 안 된다. 핵을 가진 북한과 핵이 없는 한국의 대치라는 불가피한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 전제 위에 실질적인 군사 대비 태세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한국이 재래식 군사력 면에서 대북한 우위를 더욱 확대하는 것이다. 북한이 대남 무력 도발을 꿈도 못 꾸게 만드는 일이다. 특히 이스라엘 수준의 고도로 정교하고 촘촘한 미사일 방어망 구축이 시급하다.”

―자체 핵무장론 이야기도 있다.

“그것이 북핵에 대한 유일하고 궁극적 해결책인 것은 맞다. 실현될 수만 있다면 누구보다 강력히 지지하고 싶지만 문제는 현실성이 너무 떨어진다는 것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이 인도, 파키스탄, 북한처럼 핵무장하고 국제 제재를 감내하는 건 불가능하다. 물론 그래야 할 타이밍이 올 수도 있다. 한국이 정치·경제·외교적으로 모든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핵무장을 강행하지 않을 수 없는 극한 상황이 된다면 그렇다. 예를 들어 만약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돌아와서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핵우산이 없어져 우리가 맨몸으로 북핵에 대응해야 한다면 핵무장해야겠지만, 그 정도가 아닌 이상 선택 가능한 대안이 아니다.”

 

―미국의 양해하에 제재 없이 핵무장을 하자는 주장은.

“국제사회의 현실을 무시한 지극히 편의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발상이다.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이집트, 브라질 등의 핵무장 도미노를 초래할 것이 뻔한 한국의 핵무장 용인을 미국이 단행할 가능성은 없다. 설사 트럼프가 재집권하더라도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것이다. 이런 현실적 장애 때문에 미국의 핵우산을 강화하는 확장억제 방식의 대응조치가 강구되고 있으나, 어떤 방식이든 핵사용의 궁극적 결정권을 미국이 보유하고 있다는 현실적 한계성은 극복되기 어렵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전문가 패널 공백이 지속되고 있다.

“대북제재 조치 자체는 그대로 존재한다. 위반을 감시하는 시스템이 없는 것뿐이다. 이를 유엔 내에서 하든 밖에서 하든 큰 차이는 없다. 지금처럼 안보리 내에서 마비된 것보다는 밖에서라도 하는 게 효율적일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제재에 반대하거나 미온적인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7년 대북제재 논의 때도 두 나라는 북한편에서 제재를 약화시키려 애썼다. 앞으로도 중·러는 거의 협조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집권 시 세 번째 핵 담판 전망은.

“정치쇼 차원일 가능성이 크다. 지난번 실패로 인해 김정은이나 트럼프나 리스크가 있다. 바로 정상회담을 하기보다 실무선의 협의를 먼저 하려 할 수 있다. 다만 미국이 원하는 한 가지인 ‘비핵화’는 북한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개념이다. 따라서 북·미가 만나봐야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예전에도 트럼프가 의제에도 없던 한·미연합훈련 폐지를 일방 통보한 것처럼 엉뚱한 합의를 할 위험도 있다. 그런 불상사를 방지하려면 한국이 미국에 확고하고 신뢰성 있는 동맹임을 트럼프에게 더 각인시켜야 한다. 말이 아닌 행동을 통해서 해야 한다. 더 좋은 것은 한국이 미국의 대북정책을 리드하는 외교적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다. 이는 미국과의 관계에 달려 있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어떻게 보나.

“몇 퍼센트 증액하느냐보다 더 근본적 접근을 해야 한다. 일본처럼 현지주둔비용(local cost)을 전액 부담하는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주한미군은 한국의 필요와 요청에 따라 주둔하는 것이고, 한국은 이제 세계 10대 경제국이다. 지난 수십년간 예산 부족과 병력 부족 등의 이유로 미국은 주한미군 대폭 감축을 추진했지만 한국 정부의 강한 반대에 막혔다. 동아시아 미군을 일본과 괌 중심으로 운용하고, 한국에는 신속 이동이 가능한 공군부대 정도만 배치해 제한적 병력과 예산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려는 것이 미국 국방당국의 오랜 구상이다.”

 

―대중·대러 외교 딜레마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북한의 군사동맹국인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관리 차원의 외교 필요성에는 동감이나, 저자세 굴종외교와 눈치보기 외교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런 일방적 구애를 통해서는 한반도 문제에 관한 어떤 건설적 협조도 얻어낼 수 없다.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는 철저히 평등하고 상호주의적인 관계로 정착되어야 한다.”

―한국 외교의 원칙과 철학은 무엇이어야 하나.

“한국 외교의 가장 부족한 점은 일관성 없이 공허한 이익을 따라다니는 후진국형 외교에 머문다는 점이다. 대중국 정책이 대표적이다. 무엇보다 글로벌 중추국가가 되려면 가치관과 원칙을 중시하는 선진국형 외교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다음으로는 외교기조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일관된 외교관행을 정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부당한 압박이나 위협 또는 손실이 있더라도 동요하거나 굴복하지 않는 의연한 자세다.”

 

―전략적 모호성으로 안 된다는 뜻인가.

“전략적 모호성을 취하다가 트럼프 1기 때 큰일 난 것 아닌가. 이런 말은 좋아 보이지만 합리화가 불가능한 것을 용어를 동원해서 포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모든 나라의 적이란 소리와 같다. 신냉전은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점점 더 심화해서 적어도 수십년은 갈 것이다. 지금이 평화시대라면 독자외교 등 여러 가지가 가능하다. 그러나 전 세계가 반으로 쪼개진 신냉전 시대에 중도라는 노선은 없다. 70년간 중립을 지키던 핀란드, 스웨덴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했다. 냉전을 겪어본 나라들은 국제정세가 훤히 보이니 그런 것이다. 중간노선은 양쪽에서 다 적 취급을 받는다.”

―파병에 소극적이었던 역대 한국 정부를 지적해 왔는데,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대한 의견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도 판매도 거부하는 정책은 한국의 고질적 눈치보기 외교의 소산이다. 러시아의 위협 때문에 우크라이나에 무기 공급을 주저하고 있다면 크게 잘못된 일이다. 러시아는 냉전 종식 이후에도 수십년간 북핵 문제, 천안함 폭침 사건 등에서 거의 항상 북한을 두둔해 온 나라이기도 하다. 자유민주진영의 대의에 역행한다면 한국의 국제정치적 가치관과 정체성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 광복절 축사를 평가한다면.

“한국 정부의 전통적 자유민주주의 대북정책 철학을 논리적으로 잘 정리하고, 진일보된 개념을 도입한 정책구상으로 평가한다. 다만 적대적 두 국가 체제를 지향하는 북한이 이에 호응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1956년 충북 진천 ●경기고 ●서울대 외교학과 ●외무고시 13회(1979년) ●외교부 유엔국 ●청와대 남북핵협상 담당관 ●주미 대사관 북핵문제 담당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경수로 협상 대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조정부장 ●북핵담당 대사 ●북핵외교기획단장 ●외교부 차관보 ●주 말레이시아 대사 ●주 이탈리아 대사


대담=이우승 외교안보부장, 정리=정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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