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랏 하리타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통상•기술 프로그램 선임연구원은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CSIS에서 한•미 경제안보 협력 강화를 주제로 열린 대담에서 미국의 반도체 대중 수출 통제에 대한 질문에 “한국이 우리(미국) (반도체) 수출 통제 시스템을 준수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 내부적으로 매우 어색한 위치에 있다”며 이같이 답했다. 중국의 보복을 받을 미국의 다른 동맹국들이 합심해 미국의 대중 수출 제한 능력이 약화될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었다.
하리타스 연구원은 “(수출 통제의 역사에서) 동맹국 이탈은 늘 추세가 있었다. 미국도 이것을 안다”면서도 “나의 의심은 미국이 기술의 싹을 자르려고 하는 (반도체 기술에 대한 대중 디커플링의) 초기 단계에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을 더 압박할 것이고, 다른 나라들은 이를 따르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기 때문에 (당분간은) 그렇게 할 것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엔 다른 정부가 우리가 원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장려하거나, 강요하는 도구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러면서도 “미국 기술로 만들어졌거나, 미국 부품이나 재료 혹은 기술이 포함된 제품이 아닌 경우 특정 분야에서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없다”고 지적했다.
앞서 앨런 에스테베스 상무부 산업안보차관은 전날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경제안보 콘퍼런스에서 “세계에 HBM을 만드는 기업이 3개가 있는데 그 중 2개가 한국 기업“이라며 “우리 자신과 동맹의 수요에 맞도록 이런 능력을 개발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대중 수출 통제에 동참하라는 의미로 해석됐다.
AI 산업의 핵심인 그래픽처리장치(GPU)에 들어가는 HBM은 한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기업 마이크론이 제조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정부가 HBM의 대중 수출 차단을 위한 추가 조치를 준비 중이며 동맹과 협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패널 토론을 주재한 윌리엄 앨런 라인쉬 CSIS 수석 고문 겸 국제비즈니스 의장은 미국의 반도체 정책은 프렌드쇼어링(동맹국들과의 공급망 구축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방식)보다는 온쇼어링(해외 공장들을 미국에 유치하는 방식)에 가깝다고 짚었다. 미국이 반도체과학법(Chips Act) 등을 통해 TSMC, 삼성 등 외국 반도체 기업들을 미국에 유치하려하는 방식이 동맹국들의 자체 공급망을 신뢰하는 프렌드쇼어링보다는 미국 반도체 산업을 키우려는 온쇼어링에 가깝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리타스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기술경쟁의 목표와 지향점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취해왔다”며 “반도체 동맹을 만드는 것은 양자, 혹은 삼자 등 소다자 그룹을 만드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고도 설명했다. 그는 “이는 미국에 협상 레버리지를 제공하기 때문에 미국에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함께 토론한 오미연 랜드연구소 한국 정책 석좌는 한•미•일 3국 협력을 반도체 분야 협력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 석좌는 “반도체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경제 안보에 대해 이전 정부에서도 설립한 워킹 그룹이 있다”며 3자간의 워킹그룹을 반도체 협력에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오 석좌는 또 “한•미는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위협에 맞설 보호 기제를 설립하는 것을 검토할 수 있다”며 한국무역협회 같은 기관과 민간 기업 등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는 민관 협력 모델을 제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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