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응급실 진료 거부·기피 정당한 사유 규정
“의사·간호사 협박하는 환자 진료 거부해도 된다”
추석 연휴 기간에 응급실을 지키는 응급의학과 의사나 응급실 이후 치료를 위한 배후진료과 의사 부재 등으로 인한 응급실 이송 거부 사례가 잇따르면서 환자들이 불편을 호소했다. 청주에선 25주차 임신부가 70여곳이 넘는 병원에서 이송을 거부당한 끝에 6시간여만에 치료받았고, 광주에선 손가락 절단 환자가 여러 병원을 수소문한 끝에 겨우 치료를 받았다. 정부는 각 환자 처치에 구조적인 문제가 없는지, 이송 과정에서는 개선할 점이 없었는지 등을 확인해 조치할 방침이다.
◆6시간7분이나 걸린 25주 임신부 이송
18일 의료계에 따르면 연휴 초반인 14일 충북 청주에서 하혈 중인 25주 임신부가 75개 병원의 수용 거부로 신고 접수 6시간여만에 치료를 받았다.
정부는 “충북 청주 25주 임신부는 현재 안정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특히 “119 구급대에 따르면 14일 오전 11시25분 신고를 받은 후 17시32분에 청주 모태안 여성병원에 이송 완료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산모는 모태안 여성병원 내원시 실제 진통이 있어 분만이 진행 중인 상황은 아니었다”며 “현재 치료를 받으며 산모와 태아 모두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국에 분만 병원이 부족한 것은 수년간 지적된 사안이다.
정부도 “25주 이내 조기분만은 고위험 시술로 분만과 신생아 보호가 모두 가능한 병원은 많지 않다”며 “정부는 고위험 산모·신생아 진료를 위해 신생아 집중치료 지역센터와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를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조산 위험에 대비해 산모에게 대처 방안을 안내하고, 추석 연휴 기간동안 고위험 분만 대응을 위한 이송·전원 진료체계를 다시 점검하고 있다”며 “이송 과정에서 추가적인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소방청과 협조하여 향후 점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수지접합 전문병원 전국 10여곳 불과”
전남 광주에서는 문틈에 손가락이 절단된 환자가 발생했지만 인근 병원 4곳에서 수용을 거부해 전주로 이송돼 접합 수술을 받았다.
복지부는 “15일 발생한 손가락 절단 환자는 수지접합 수술이 가능한 병원인 전주 수병원으로 이송해 수술이 완료된 상태”라고 전했다.
복지부는 “구급대에 따르면 15일 오후 1시31분 신고를 받고 오후 3시37분 수지 접합수술이 가능한 전주 수병원에 이송했다”며 “당일 오후 1시41분 현장에 도착해 지혈 등 응급처치를 하고, 손가락 절단 환자의 수지 접합수술이 가능한 전문병원 문의 후 오후 2시4분 접합수술이 가능한 전주 수병원을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남대병원, 조선대병원, 상무병원은 접합수술이 불가한 병원이고, 수지 접합수술이 가능한 대중병원은 휴무인 관계로, 이런 사실을 보호자에게 설명해 오후 2시30분쯤 전주 수병원으로 출발한 것”이라고 밝혔다.
복지부는 “손가락 절단 시 이뤄지는 수지접합술은 1㎜ 이하 혈관을 25배 정도 확대하는 미세현미경을 사용하는 수술로, 보다 전문적이고 수술 경험이 많은 수지 접합전문병원에서 수술하는 것이 적합하다”며 “수지접합의 특성상 진료가능한 전문병원이 전국에 10여개로 많지 않아, 사전에 정형외과 전문병원 중 수지접합 가능한 병원 리스트를 미리 광역 응급의료상황실과 소방청에 배포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환자가 이송된 전주 수병원은 배포된 리스트에 포함된 병원이고, 광주의 전문병원인 대중병원은 휴무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평상시에도 손가락 절단 등이 발생할 경우 인근 종합병원보다는 수술이 가능한 전문병원으로 시·도를 넘는 이송이 잦다”며 “통상 잘린 손가락 보존상태에 따라 12시간~24시간 이내 수술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복지부는 “추석 연휴기간 동안 권역응급의료센터 등 대형병원의 과부하 방지를 위해 수지접합 수술을 전문병원 중심으로 진료가 가능하도록 했다”며 “추석 연휴 대비를 위해 수지접합이 가능한 병원 목록을 소방청 및 광역응급의료상황실과 사전에 공유했다”고 밝혔다.
◆응급실진료 거부·기피 ‘정당한 사유’ 명시
추석 연휴를 앞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가짜 정보인 ‘응급실 대란 꿀팁’이 확산한 것과 관련해 정부는 연휴 직전인 13일 ‘응급의료법상 진료 거부의 정당한 사유 지침 안내’ 공문을 전국 17개 시도와 대한병원협회, 대한의사협회, 대한간호사협회 등에 보냈다.
응급실에서 감기나 설사 같은 경증·비응급 환자를 수용하지 않거나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진료를 거부해도 의료진에 책임을 묻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특히 응급실에서 의사나 간호사 등을 폭행하거나 협박하고, 의료 시설과 기물을 부술 경우도 정당한 진료 거부·기피로 규정했다. 환자나 보호자가 모욕죄나 명예훼손죄, 폭행죄, 업무방해죄에 해당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의료인이 정상적인 의료행위를 하지 못하게 된 경우도 정당하게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사례다. 아울러 응급실의 인력이나 시설, 장비가 부족해 적절한 응급의료 행위를 할 수 없는 경우, 통신·전력 마비나 화재 등 재난 때문에 환자를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정당한 진료 거부에 해당한다.
대한응급의학회는 “응급실에서 진료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난동을 부리는 환자가 많다”며 “응급의료법은 일반 의료법과 달리 진료 거부에 따른 벌칙이 더 강한데, 지금까지는 이런 사례도 모두 응급의료 거부에 해당해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의료법상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한 의료진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러나 응급의료법에서는 같은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적용돼 벌칙이 더 무겁다.
한편, 정부는 13일 중증 응급환자를 중점적으로 치료하기 위한 거점 지역응급의료센터 14개소를 지정했다. 거점 지역응급의료센터는 역량 있는 지역응급의료센터가 중증 응급환자(KTAS 1∼2등급) 치료 중심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지정한 것으로, 권역응급의료센터의 부담을 줄이고 국가 전체적인 중증 응급환자 치료 역량을 높이기 위해 마련됐다. 지역응급의료센터 중 허가병상 300병상을 초과하는 종합병원 이상의 의료기관 중 신청한 35개 기관을 대상으로 인력구성, 진료역량 등에 대한 평가를 거쳐 14곳을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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