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타 수업하며 발달장애인과 인연
음악 통해 변화… 연주단 첫발 떼
사비 들여 악기 구입 등 열정 쏟아
길거리 공연 호응… 장애 편견 깨
“직업 연주가 될 수 있게 돕고 싶어”
“저∼ 산자락에 긴 노을 지면∼ 걸음걸음도 살며시∼ 달님이 오시네∼.”
이달 2일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동의 한 예술학원 2층. 연습실 입구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청각이 자극된다. 경쾌한 여러 악기 소리와 함께 가곡 ‘아름다운 나라’ 노래가 구성지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곳은 주로 경남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악연주단 ‘청(淸)’의 연습 무대이다. ‘청’의 특이한 점이 있다면 연주단의 구성원들이 발달장애인이라는 것이다. 단원이 25명 정도인 청은 20∼30대가 대부분이며, 요양보호사 보조원이나 장애인식개선 보조강사 직장인도 있다.
청을 이끌고 있는 수장은 김민재(39) 음악감독이다. 김 감독은 “사람들에게 깨끗하고 순수한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국악연주단 이름을 ‘청’이라고 정했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의 이력은 특이하다. 요샛말로 청의 음악감독은 그의 부캐(부업)다. 본캐(본업)는 방과후 강사이다.
방과후 강사는 어쩌다가 발달장애인들의 감독님이 되었을까. 김 감독의 방과후 수업 과목은 난타와 사물놀이였다. 2016년 한 주간활동센터에서 난타 공연 수업 의뢰가 들어왔다. 김 감독은 이 의뢰를 통해 발달장애인들과 인연을 맺었다. 이날 수업 후 그는 ‘발달장애인들과 의미 있는 공연을 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것이 ‘청’의 시초였다.
김 감독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타악 연주 활동은 발달장애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활동이지만 흥미를 유발하기는 어렵다”면서 “음악과 함께하는 난타를 통해 학생들에게 수업을 지도했는데 그 부분이 우리 친구들에게 많은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줬다”고 말했다.
굳은 결의로 시작한 만큼 사비를 들여 연주단에 사용할 악기들을 구입했다. 물론 적은 돈은 아니었다. 김 감독은 이보다 더 큰 결실이 있을 거라는 믿음에 첫발을 뗐다고 한다. 김 감독은 “발달장애인들과 국악연주단을 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니 주변에서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걱정했지만 우리 친구들을 믿고 도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혔다. 발달장애인들을 손수 하나하나 가르쳐야 하는 현실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대부분의 단원에게 악보를 가르치기 전 한글부터 가르쳐야 했고, 또 다른 단원은 숫자도 가르쳐야 했다. 거의 훈련에 가까운 반복적인 연습에 지친 나머지 몇몇 단원은 그의 가르침을 쉬이 따라오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김 감독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지도 방법을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그런 노력의 산물 중 하나가 바로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그들만의 ‘악보’였다. 특히 국악연주단인 만큼 다루는 악기도 해금·대금·피리·태평소 등인데 발달장애인들도 이런 악기들을 쉽게 다룰 수 있는 이해하기 쉬운 악보를 김 감독이 직접 만들었다.
통상 악보는 오선지에 음계와 음표가 그려져 있지만 김 감독의 악보는 단순하다. 계이름과 왼손, 오른손, 화살표, 숫자가 그려져 있다. 발달장애 특성에 맞춰 단순화하고 도식화한 것이다. 악기 다루는 게 쉬워지니 연주단의 실력도 쑥쑥 늘어갔다. 단원들도 스스로 놀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김 감독뿐만 아니라 단원들에게도 변화가 일어났다. 처음에 없던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자신감의 ‘끝판왕’ 격인 길거리 공연 ‘버스킹’도 추진해봤다. 김 감독은 “버스킹 공연을 한 후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에 자신감을 넘어 단원들의 자존감까지 높아졌고, 청의 결속력이 더욱 단단해졌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에 가로막혀 사회적으로 고립된 발달장애인이 연주와 공연을 통해 삶의 활력을 되찾으면서 매사가 밝아지고 적극적으로 변하는 걸 느낄 수 있어서 정말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의 연주가 직업 활동으로 연계돼 자립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저의 소명”이라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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