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서 수확기간·노동력 감소 효과 입증
과일의 크기와 병충해 내성도 뛰어나
한국도 11개 작물 생육 빅데이터 확보
시스템 자동화로 연구기간 단축시켜
유전형 자료 초고속 분석·민간에 공유
고령화와 인구 감소, 이상기후 등으로 농촌은 위기를 맞고 있다. 기존의 농업 패러다임으로는 미래 세대의 먹거리를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 들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이상기후로 인한 농작물 피해는 신선식품의 가격 폭등으로 이어지면서 당장 우리 생활에 실질적 위협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디지털 육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디지털 육종은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머신러닝(기계학습), 딥러닝(심층학습) 등을 수행한 인공지능(AI)을 통해 기후변화에 맞는 종자를 찾아내 개발하는 방식이다. 농촌진흥청이 선두에서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 육종사업은 농업 혁신의 ‘씨앗’으로 자라고 있다.
19일 농진청에 따르면 내년도 스마트 농업 확산, 디지털 육종 모델 개발, 푸드테크 산업화 지원 등에 예산 1380억원이 투입된다.
농진청은 특히 디지털 육종사업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디지털 육종은 유전체·표현체 정보 등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AI 기술을 활용해 육종 기간은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기술이다. 독일 바이엘사가 디지털 육종을 도입해 토마토를 키운 결과 수확까지 걸린 기간은 기존보다 17% 줄고, 노동력은 66% 줄었다. 과일의 크기와 병충해 내성도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디지털 육종기술은 농진청 주도로 벼, 콩 등 주요 작물의 빅데이터를 생산·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제 나타나는 작물(표현형·생명체의 관찰 가능한 특징적인 모습이나 성질)의 예측 정확도를 높이고 있는 단계다. 다만 소규모 작물에 대해서는 갈 길이 먼 것이 사실이다.
지난 5일 찾은 전북 전주시 덕진구 소재 농진청 표현체 연구동과 농생명 슈퍼컴퓨팅센터는 디지털 육종기술 발전의 핵심 인프라다.
농진청은 작물 특성을 빠르고 대량으로 분석하기 위해 2017년 표현체 연구동을 설립했다. 연구동에선 스마트 온실에 가시광, 근적외선, 형광 등의 센서를 로보틱 자동화 장비로 구성해 최대 1012개 개체를 한 번에 촬영·분석할 수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연구시설이다.
연구동에서 자라고 있는 1012개 개체의 콩과 벼는 이틀에 한 번씩 촬영을 통해 데이터로 축적된다. 컨베이어 벨트와 이미지 체임버(촬영 장비)로 이뤄진 관련 시스템은 모든 과정이 자동화돼 있다. 이 과정을 통해 개체의 생육과 변화 등 모든 데이터가 저장된다.
김경환 국립농원과학원 유전자공학과장은 “육종가들이 직접 촬영을 한다면 촬영 및 분석 기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지만, 표현체 연구동의 시스템을 통해 획기적으로 연구 기간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표현체 인프라를 활용해 ‘밀양 23호’와 ‘기호벼’의 교배 조합에서 2∼4주 된 어린 식물의 키와 관련된 유전자 위치를 찾아 수확량과의 연관성을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 연구 결과는 과학기술인용색인(SCI) 학술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에 개재돼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디지털 육종을 위해서는 대량으로 분석된 유전체·표현체 데이터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농진청은 연구동을 통해 콩 핵심집단 430종의 종자 이미지를 2021∼2022년 확보했으며, 이외 식량과학원에서 육성한 벼 육성집단 100종, 콩 핵심집단 100종의 전 생육 기간 시기별 이미지를 수집하는 등 11개 작물에 걸쳐 94 테라바이트(TB) 규모의 이미지 340만장을 확보했다.
표현체 연구동은 2022년 정부로부터 국가참조표준데이터 센터로 지정돼 이듬해 데이터 시범생산을 거쳐 올해부터 벼를 대상으로 데이터 생산을 본격화했다.
연구동에서 수집된 데이터는 슈퍼컴퓨터를 통해 분석·가공된다. 농생명 슈퍼컴퓨팅센터 역시 디지털 육종을 비롯해 농업기상 데이터 분석, 병충해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앞서 농진청은 총사업비 148억원을 들여 총면적 2057㎡에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의 슈퍼컴퓨팅센터를 지난해 9월 준공했다.
농진청은 지난해 11월부터 슈퍼컴퓨터를 활용해 농업 빅데이터를 확보하고, 주요 작물의 유전형을 분석해 민간에서 공동 활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하고 있다.
센터 2층에서는 슈퍼컴퓨터 2호기를 활용해 경제적으로 중요한 작물이면서 종자 기업 등에서 분석 수요가 높은 고추, 콩, 벼 등을 대상으로 유전형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분석하는 과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일반 PC 3000대 성능을 자랑하는 슈퍼컴퓨터 2호기를 이용하면 140만개의 분자구조를 한 번에 분석할 수 있다. 일반 종자 기업에서 4개월 이상 걸릴 데이터 분석을 3일로 줄일 수 있는 수준이다.
권수진 국립농원과학원 유전체과장은 “디지털 육종의 핵심은 데이터이고, 또 다른 핵심은 이를 분석하는 컴퓨터”라며 “표현체 연구동에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슈퍼컴퓨팅센터에서 이를 분석해 민간 영역의 연구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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