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너무 작은 현실적인 이유로 라흐마니노프 곡 치기 어려워”
“예술은 매우 신성, 콩쿠르와 예술 혼동하면 위험…학생들에게 콩쿠르만 강조하면 안 돼”
“요즘 (콩쿠르 수상 실적 등) 커리어(경력)를 많이 강조하는데 커리어와 예술을 혼동하면 상당히 위험해요. 학생들에게도 예술의 본질을 가르쳐야지 콩쿠르만 강조하면 예술과 상관 없는 길로 인도하게 됩니다.”
내한 독주회를 앞두고 지난 18일 서울 신사동 클래식 음반 전문점 풍월당에서 팬들과 만난 포르투갈의 거장 피아니스트 마리아 조앙 피르스(80)는 “예술은 매우 신성한 것”이라며 이렇게 당부했다.
“예술은 영혼과 우주 등 인간을 초월한 뭔가를 표현하는 것인 만큼 커리어나 ‘누가 좋다, 나쁘다’로 비교하는 대상이 아니고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하면서다.
그가 연주회는 연주자 스스로 뭔가를 보여주려 하는 자리가 아니라 작곡가와 지휘자, 오케스트라, 관객들과 삶과 고통, 행복 등 모든 것을 나누는 대화의 자리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음악에선 연주자가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뭔가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가장 위험해요. 연주는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게 중요합니다. 저도 청중들에게 귀를 기울이며 항상 쌍방향 대화를 하려고 해요.”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와 협주곡을 각각 5살과 7살 때 연주한 피르스는 모차르트와 슈베르트, 쇼팽, 드뷔시 곡에 정통하고 즐겨 연주하는 편이다. 그 이유를 묻자 “누구에게나 더 끌리는 작곡가와 곡이 있듯이 단지 그들의 음악을 좋아해 공부하는 사람일 뿐 이들 작곡가에 대한 스페셜리스트(전문가)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모차르트를 천재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기쁨과 눈물, 빛과 고통처럼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표현하는 능력이 대단하다”면서 “제 손이 너무 작아 현실적으로 라흐마니노프 곡은 치기 어렵다”며 웃었다.
피르스는 1991년 포르투갈에 벨가이스 예술연구센터를 설립해 젊은 음악가를 양성하고, 2012년 벨기에에 불우한 환경의 아이들을 위한 합창단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등 교육자로서의 역할도 활발히 해왔다. 그만큼 교육방법론에 대한 연구와 고민도 많이 한 그는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칠 때 연주 방법에 대한 기교를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경우가 많은데 다양한 소리의 세계를 발견하고 그 소리들이 얽혀 어떤 관계를 만들어 가는지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사제간에도 ‘동등한 관계성’을 중시한 그는 대가(마스터)가 개인 지도를 해주는 마스터클래스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마스터클래스란 마스터라고 알려진 누군가가 무지한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누가 마스터를, 무지한 사람을 결정하나요. 진정한 교육은 동등한 관계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마스터클래스는 시작부터 동등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레슨을 할 때도 ‘함께 더 나은 소리를 만들어보자’고 합니다.”
피르스가 면이나 마 같은 평범한 소재로 된 소박한 평상복에 굽이 없는 신발을 신고 화장기 없이 무대에 오르는 것도 관객들에겐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어떤 사람은 영혼의 스승 같다고도 한다. “옷은 존재를 표현하는 방식이라 좋아하는 것을 입게 마련인데 저는 대체로 심플(단순)한 것을 좋아합니다. 영혼의 스승이라니 가당치도 않아요. 저는 아직도 날마다 삶을 위해 더 배우려고 노력합니다.”
피르스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쇼팽 녹턴과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를 들려준다. 이어 21일 아트센터인천, 25일 대전 예술의전당, 27일 대구콘서트하우스, 29일 서울 강동아트센터에서 관객과 만난다. 이후 대만으로 건너가 독주회를 한 뒤 다시 내한해 10월26일 성남아트센터에서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와 슈베르트 연가곡 ‘겨울나그네’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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