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뜻하지 않게 기회가 생겨 종합 심리 검사를 받았다. 검사 종류가 주관식과 객관식을 망라하여 대여섯 가지쯤 되었던 것 같다. 사실 검사명의 영문 약자들이 비슷한 데다 내용도 겹치고 무엇보다 한꺼번에 여러 검사를 몰아치듯 받은 탓에 나중에는 이게 그거 같고 그건 저거 같고 이 문항에서 내가 아까는 이렇게 답했는지 저렇게 답했는지 총체적으로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헷갈리는 상황에서도 나는 나의 심리와 기질과 성격이 최대한 정확하게 드러나도록 최선을 다했는데, 문득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오히려 검사의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특히 주관식 검사에서 그러했다. Sentence Completion Test, 이른바 문장 완성 검사는 응답자에게 특정 문장을 앞부분만 제시해주고 나머지 뒷부분을 이어 쓰게 하는 것이었다. 검사지 상단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을 써야 한다, 최대한 빨리 써야 한다’는 주의사항이 있었다. 성실하고 협조적인 응답자로서 나는 당연히 그렇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곤란해졌다. 어느 나라에서 고안한 검사인지 몰라도 내게 제시된 것은 한글 번역본이 틀림없었는데 일부 문장이 다소 부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처음에 나는 곧이곧대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을 썼다. 문장이 어색합니다.
그랬다가 곧 지웠다. 그렇게 쓰면 안 될 것 같아서였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바삐 오갔다. 혹시 그렇게 써도 내 입장에서는 시키는 대로 최선을 다한 것이고 세상에는 별의별 응답자가 다 있을 것이며 결과도 별의별 변수까지 다 고려하여 도출될지 모르니 그대로 쓰자는 생각. 그래도 그렇지, 문장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이 비문인지 오문인지 혹은 번역이 어색한지 따위를 평가하는 식의 응답은 상식적으로 검사의 의도에 맞지 않으니 그렇게 쓰면 안 된다는 생각. 가만있자, 최대한 빨리 써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 이렇게 갈팡질팡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것 자체가 이미 패착 아닌가. 아니, 그나저나 지금까지 문장이 어색하다는 지적을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나. 다들 아무렇지도 않았나. 내가 문제인가. 나만 예민하게 구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게 다 내가 글 쓰는 사람이어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사람이어서, 말하자면 직업병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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