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과 중앙은행의 관계는 ‘뜨거운 감자’다.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인하, 또는 동결 결정이 민심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금리를 내린다는 것은 곧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린다는 뜻이다. 소비와 투자가 늘고 내수 시장이 활성화하니 소상공인과 서민들 입장에선 환영할 일이다. 자연히 정부 지지율이 오르고 여당이 선거에서 이길 확률도 커진다. 반대로 금리를 현행 수준 그대로 두거나 올리면 정권의 인기는 떨어질 게 뻔하다. 문제는 인플레이션을 막아야 할 중앙은행으로선 국민과 정부가 원한다고 금리를 마냥 낮출 수 없다는 점이다. 세계 모든 나라에서 ‘정치로부터 중앙은행의 독립’이 강조되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8일 기준금리를 0.5% 포인트 인하하는 이른바 ‘빅컷’을 단행했다. 11월5일 대선까지 50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다. 선거의 최대 쟁점들 중 하나가 인플레이션이란 점에서 연준의 결정은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금리를 내린 것은 미국 경제에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사라졌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당연히 여당인 민주당은 기뻐하는 모습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반가운 소식”이라고 밝혔다. 다만 “서민들은 여전히 인플레이션 때문에 힘들다”는 공화당의 공세를 의식한 듯 “고물가와의 싸움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우라 한국은행 총재에 해당하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그의 임기 도중 임명한 인물이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파월을 겨냥해 “연준이 정치적 행동을 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금리를 낮춘 연준의 결정이 여당에 유리하고 야당엔 불리하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사실 트럼프와 공화당은 이번에 연준이 금리를 발표하기 오래 전부터 “대선 전에는 금리를 인하해선 안 된다”는 주장을 펴왔다. 그럼 파월이 트럼프를 배신한 걸까. 파월을 처음 연준 의장에 앉힌 대통령은 트럼프였으나, 2022년 4년 임기가 끝난 그를 연임시킨 사람은 바로 바이든이다. 파월은 트럼프와 바이든으로부터 모두 인정을 받은 보기 드문 인재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린 이튿날인 19일 바이든이 수도 워싱턴의 경제인 클럽에서 연설했다. 그는 자신의 임기 동안 미국 경제가 얼마나 성공을 거뒀는지 열과 성을 다해 홍보했다. 트럼프 행정부 때 경제가 얼마나 엉망이었지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트럼프를 대공황 당시의 대통령 허버트 후버에 비유하기도 했다. 바이든은 연준의 금리 인하 결정을 가리켜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므로 내가 보기에는 경제 전반에 희소식”이라고 반겼다. 하지만 그도 ‘연준이 선거를 의식해 정치적 결정을 내렸다’는 세간의 인식이 꺼림칙했던 듯하다. 바이든은 “연준의 독립성을 존중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는 대통령이 된 뒤 연준 의장과 한 번도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팩트체크로 유명한 미국 언론들이 검증에 나선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바이든의 말은 진실일까, 거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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