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경찰서 A 경위가 숨진 채 발견된 것은 올해 7월19일이다. 5개월 전 수사 부서에 발령된 30대 A 경위는 전임자가 맡았던 사건 53개를 한꺼번에 배당받았다.
A 경위는 생전 동료들에게 업무 과중을 토로하는 한편 부서 이동을 신청했다. 실제로 전국경찰직장협의회가 공개한 A 경위의 모바일 메신저 대화를 보면 “사건이 73개다. 이러다 죽는다”, “죽을 것 같다. 길이 안 보인다” 등의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A 경위 사망 사흘 뒤인 7월22일에는 충남 예산서 소속 20대 B 경사가 세상을 등졌다. 유족들은 B 경사가 최근 과도한 업무 부담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서울 동작서 소속 40대 C 경감은 나흘 뒤인 7월26일 사무실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졌다.
젊은 경찰관들이 과로를 호소하며 숨진 사례들이 최근 잇따른 가운데, 실제로 현장 경찰관들의 업무 부담이 올해 들어 대폭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청은 20일 공개한 현장 근무여건 실태 진단 결과에 따르면 올해 1~6월 전국 경찰서가 접수한 사건은 61만8900건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44만9285건과 비교하면 37.6%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11월 법무부 수사준칙 개정에 따라 고소·고발 반려 제도가 폐지되면서, 경찰은 이전과 달리 고소·고발 전 건을 접수하게 됐다. 이에 따라 업무 부담이 폭증했다는 것이 경찰 측 설명이다.
수사 부서 외에도 과중한 업무를 맡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 상황이라는 것도 이번 실태 진단에서 드러났다. 여성청소년 부서의 경우 피해자 보호 업무가 수사 부서에서 이관된 데다, 민감한 사건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현장 경찰관들의 심리적 중압감과 스트레스가 큰 것으로 조사됐다.
민원 부서 역시 민원인들의 폭언과 협박, 반복 민원 등이 증가하는 추세다. 민원인 위법행위는 2021년 2997건에서 2022년 5218건, 지난해 1만323건으로 가파르게 늘어났다. 반복 민원 역시 같은 기간 6만3351건, 7만1957건, 8만5236건으로 급증했다.
악성 민원이 반복되면서 직무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부서를 옮기는 사태도 반복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경찰서 청문민원관리팀 581명 중 40% 이상인 236명이 교체됐다. 교통민원실 공익신고 담당자 중 경력 1년 미만이 57%, 2년 미만이 21%에 달한다.
경찰은 이번 실태 진단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개선 대책을 마련해 시행한다. 우선 경찰서 통합수사팀의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사건 배당 전 접수 단계에서부터 유사한 사건을 병합해 수사하도록 하는 등 수사 업무를 효율화한다. 광역 단위 수사가 필요하거나 난이도가 높은 사건은 시도청 전문부서로 이관하는 범위를 확대할 방침이다.
민원 부서의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민원 상담용 인공지능(AI) 챗봇을 도입해 반복 업무를 자동화·간소화하는 한편, ‘악성 민원 대응 지침’도 마련한다.
수사 부서는 신임 수사관의 적응을 돕기 위해 사례·실습 위주로 교육을 개편하고 전입 시 2주의 수습 기간을 부여한다. 역량과 사건의 난이도를 고려해 사건을 배당함으로써 심리적 부담감을 줄일 계획이다.
여성청소년 부서는 업무 효율화를 위해 산재해있는 6개의 온라인 시스템을 일원화하는 '사회적 약자 보호 종합플랫폼 시스템' 구축사업을 2027년까지 추진한다.
또한 시도청과 일선서별로 각종 치안 지표와 업무량 등을 분석해 인력 재배치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내년 상반기 정기인사 때 반영할 예정이다.
경찰서 통합수사팀에 대한 특별승진, 승급, 대우공무원 기간 단축 등 성과보상 확대와 경찰 직무특성을 반영한 각종 수당 신설을 적극적으로 검토한다.
경찰관들의 마음건강 진단·관리를 내실화할 수 있도록 마음동행센터를 기존 18개소에서 36개소로 확충하고, 상담관 또한 36명에서 108명으로 증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조지호 경찰청장은 “한정된 인력으로 국민의 요구와 기대에 부합하는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이번에 마련한 대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며 “현장 경찰관들이 역량과 자질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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