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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하

네모를 가방에 넣고 걸을까 합니다
동그라미가 될 때까지

모든 것을 용서합니다
용서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산책로가 필요합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
둘이서 얘기하며 걷는 사람
뒤로 걷는 사람
박수를 치며 걷는 사람의 소음이
가방 안에서 네모가 내는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지워야 합니다


(중략)


용서가 되지 않더라도
아직 걷지 못한 산책로가 있으니까

내일 다시 걸읍시다
네모의 모서리가 약간 닳아 있습니다

누구나 한두 개쯤 각진 “네모”를 품고 있을 것이다.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나 일, 좀처럼 지울 수 없는 아픈 것들을. 네모를 가방에 넣고 걷는 마음이란, “모든 것을 용서합니다” 되뇌는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이때의 걷기란 일종의 수행(修行) 같다. 자신 안의 네모를 동그라미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니. 무엇이 이런 걷기를 추동하는가 생각하면 결국 ‘나’ 아닐까. 나의 용서는 ‘너’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임을. 용서로써 먼저 스스로의 회복을 구하는 것임을. 물론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그러고 보면 산책로는 더없는 수행처다. 하루하루 생활을 일구는 사람, 사람들의 건강한 소음이 내 속의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적당히 감춰준다. “모든 것을 용서합니다” 여러 번 중얼거려도 들키지 않는다.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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