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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질 녘 세 시인이 만났다. 연희동 ‘연희창작촌’ 근처에서. 한여름 불볕더위가 이제야 끝나는지 모처럼 시원해진 오후 다섯 시. ‘연희창작촌’ 3개월 입주가 곧 끝난다는 두 남성 시인을 만났다. 한 시인은 지방에 살아 아주 많이 오랜만이고, 한 시인은 같은 동네에 살아 절친이 된 사이라 번개 모임임에도 만나자마자 분위기는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일단 이른 저녁을 먹고 연희동 골목골목을 산책하며 그동안의 회포를 풀었다. 저물녘이라 연희동 골목길은 한산하고, 비 온 뒤라 하늘은 청명하고, 노을빛을 띤 뭉게뭉게 구름은 더한층 자유롭게 뭉쳤다 흩어지고 있었다. 차(茶)는 ‘연희창작촌’에 가서 마실까? 오래전에 나도 그곳에 입주한 적이 있었으니 오랜만에 그곳 정취도 떠올릴 겸.

 

그렇게 의기투합하고 걷다가 시인이면서 영화감독인 한 시인이 아담하고 예쁜 카페 앞에서 갑자기 저곳에서 차 마실까? 멈추어 섰다. ‘이심’이란 입간판이 참하고 소담스러운, 반지하 카페임에도 밖에서 보면 안이 환히 보이는, 입구가 참 예쁜 카페였다. 요즘은 어디든 예쁜 카페가 많아 카페 구경만 다녀도 관광이 된다는 이들이 많아지는 추세니, 우리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곳곳에 전시된 다기와 커피 기구들이 균형 있게 분산된 미(美)를 보여주는 작고 깜찍한 카페였다.

 

우리는 차를 마시며 연희촌 귀신 이야기부터 각자의 창작 이야기와 고심, 앞으로의 계획, 나이 듦에 대한 근황들을 풀어놓았다. 그새 해는 지고 어둠이 고즈넉이 내려앉고 있었다. 세 시인 모두 내일이 마감인 원고를 쓰다 번개로 모인 상황임에도 그 무시무시했던 한여름을 무사히 통과하고 시원한 바람 속에 있기 때문일까? 아주 느긋하고 편하게 이 만남을 즐기고 있었다. 세 시인의 입에서 연거푸 흘러나오는 ‘아, 좋다!’라는 말이 ‘모처럼 만에 맛보는 소소한 여유야!’로 들려 묘하게 기분 좋았다.

 

카페를 나와 우리는 연희촌으로 발길을 돌렸다. 참 오랜만에 들르는 연희촌. 내가 있을 땐 없었던 상사화들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어, 노란색 상사화도 있네. 휴일이라 그런지 창작촌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하지만 바람 소리는 여전했다. 이곳에 있을 때 나뭇잎들의 크고 작은 휘파람 소리가 상쾌해 아침마다 커피잔을 들고 와 앉아 있곤 했던 숲 앞 벤치도 그대로 있었다.

 

그때에 비하면 문화예술 창작촌들도 더 많이 생겨나고, 참가 인원도 더 많아졌다. 바람직하고 좋은 일이다. 단기일지라도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건 정말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요즘 횡행하는 억압적인 언어들, 평온과 화합을 방해하고 소통을 단절시키는 언어와 바닥을 치는 분별없는 언어들에 대한 근심과 자신만의 초심을 사수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이야기까지, 참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그럼에도 우리는 결코 초심을 잃지 말자며, 그 초심은 아직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우리의 힘이 아니겠냐며 서로를 향해 ‘파이팅!’을 외치며 헤어졌다. 더 깊어진 가을밤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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