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편집·교정자들과 필요성 공유 중요
소설 무대 평사리·간도 등 함께 찾아가 봐
독자들 성원이 힘… 정기구독 해주기도
1990년대 日 유학 계기로 비즈니스 시작
한강·신경숙 작품 등 120여종 한국 책 출판
앞으로도 한국문학 확산 안테나 되고파
매년 ‘번역 콩쿠르’ 열어 번역가 발굴·소개
日서 번역된 한국 책 DB 만드는게 목표
한국 대학·기관 등서 관심 가져주었으면
경남 통영시 박경리 선생 묘소에서 19일 의미 있는 행사가 열린다. 대하소설 ‘토지’ 20권 전부를 일본어로 번역(사진)했음을 알리는 자리다. 일본 도쿄에서 한국문학 번역, 출판을 전문으로 하는 쿠온출판사가 주최한다. 선생이 생전에 설립, 운영했던 토지문화재단과 일본어판 협의를 마친 게 2014년이니 꼬박 10년간 이어진 대장정의 끝이다.
“일본에는 토지만큼의 양과 질을 가진 근·현대 배경의 대하소설이 없습니다. 번역, 편집, 교정을 담당한 사람들과 토지 일본어판 출판의 필요성을 공유하고, 각오를 다져가며 10년을 보냈습니다.”
김승복 쿠온출판사 대표의 감회는 클 수밖에 없다. “고령의 일본인 독자가 자신이 죽기 전에 토지 번역을 끝내 달라는 요청도 있었다”고 전할 때는 일본에 한국문학을 제대로 알리고, 그 성과를 확인했다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토지 일본어 완역이란 뚜렷한 이정표를 세운 김 대표는 2007년 쿠온을 설립했고, 2015년 서점 ‘책거리’를 열어 일본에 한국문학을 소개하는 일을 해왔다. 한국문학의 위상이 높아지는 걸 가까이서 지켜봤고, 그것을 자양분 삼은 비즈니스로 성장에 일조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달 19일 고서점이 몰려 있는 도쿄 진보초 책거리 매장에서 김 대표를 만나 일본 내 한국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문학 전문 출판사, 서점을 운영하게 된 계기는.
“한국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고, 1991년 일본에 유학 와서는 문예평론을 공부했다. 그즈음엔 일본 저자들이 일본어로 쓴 한국 관련 책이 대부분이었고, 서점에서는 그리 중요하게 다뤄지지도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걸 봤다. 사람들은 자신이 잘하는 걸 가지고 일을 하지 않나. 문학에 관심이 많았고 그걸 비즈니스 아이템으로 삼아 시작한 거다.”
―당시에 일본에 잘 알려진 한국 작가는.
“김지하가 많이 소개됐고, 지금도 인기가 많다. 예전에 일본에서 한국문학은 한국의 민주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정치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던 것이 드라마 ‘겨울연가’ 돌풍 이후 문화적인 접근으로 바뀌었다. 우리가 예전에 일본문화에 관심이 컸을 때 그랬던 것처럼 음악, 패션 등에 대한 관심이 문학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한국문학 전문 출판사, 서점이 지금은 많은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협력해서 시장을 더욱 키울 수 있다면 쿠온도 더 많은 책을 낼 수 있다. 내가 도울 수 있다. (한국문학을 일본 출판사에 소개하고, 출판 협상 등을 중개하는) 안테나 역할을 하고 싶다. 나만 열심히 해서는 한계가 있다. 진심인 사람들이 여럿 모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 아닌가.”
김 대표는 새로운 한국문학 시리즈, 한국문학 명작 시리즈 등을 통해 120여종의 한국 책을 출판했다. 이 안에 한강, 김영하, 신경숙, 황석영, 최인훈 등의 작품이 포함돼 있다. 외국에 한국 작가, 작품을 알리는 이런 작업의 근간은 번역이다. 좋은 실력을 가진 번역가의 존재는 외국에서 한국문학의 저변을 넓히는 기반이다. 김 대표가 2017년 이후 매년 여는 ‘한국책 번역 콩쿠르’가 주목되는 이유다.
“출판사를 하면서 한국어 번역을 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이런 사람들을 무대에 제대로 세워보고 싶었다. 한국 단편소설 두 작품을 제시해 공모한다. 번역한 것을 받아 심사를 하고, 출판까지 하는 방식이다. 2017년 첫회에 212명이 응모했다. 응모 과제에 도전했다가 (중간에) 좌절한 사람이 많았을 걸 고려하면 (응모를 하려 한 사람은) 1000명이 넘을 거다. 매년 평균 150명 정도는 응모한다. 올해가 8회인데 글이 점점 좋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콩쿠르 당선자들과는 작업을 함께하나.
“우리(쿠온)와 함께하기도 하고, 다른 출판사에 소개도 한다. 이 사람들이 더욱 성장해서 (한국문학 시장이 확대될 수 있는) 토양이 풍부해지는 건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다.”
―토지 완역에도 번역자의 중요성이 컸을 것 같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번역자 두 명이 각 권을 나눠서 했다. 작업을 시작할 즈음에 편집자와 1년에 걸쳐 등장인물의 한자명, 말투 등을 정리해 통일성을 기했다. 예를 들면 주인공 최서희의 말투가 달라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토지에는 한국 각 지역의 사투리가 많이 나온다. 이건 표준 일본어로 번역했다. 특정 지역의 사투리를 일본의 어떤 지역 사투리로 바꾸는 것이 왜곡된 이미지를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완역 과정에 또 신경을 쓴 것이 있다면.
“이 작업의 필요성을 공유하는 게 중요했다. 번역에 들어가기 전 (소설의 무대인) 평사리, 간도, 블라디보스토크 등을 직접 찾아가 봤다. 토지학회 선생들의 강연도 들었다. 1, 2권이 나왔을 때 선생님 묘소에 다녀왔고 8, 9권이 출판됐을 때 도쿄 한국문화원에서 행사를 열었다. 힘든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했다.”
―일제강점기 배경이라 거부감이 있지 않을까.
“토지는 동아시아의 근·현대 정세를 알 수 있는 좋은 텍스트다. 무엇보다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토지를 ‘반일’로 이해하는 건 제대로 읽지 않은 사람들의 말이다. 10년 동안 작업을 해오며 많은 독자의 성원이 전화로, 엽서로 이어졌다. 서점이나 기관에서 정기구독을 해주기도 했다. 출판이 예정보다 늦어지면 독촉하는 전화가 오기도 했다.”
―일본 독자들 한국문학의 어떤 점을 좋아하나.
“일본 소설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사소설이 대부분이다. 한국도 이런 소설이 많지만 그 안에서 사회적, 역사적인 배경에 천착한다. 이런 점을 좋아하는 것 같다.”
―최근 인기가 높아진 분야는.
“한국시를 읽은 일본 시인들의 반응을 꼽고 싶다. 한강, 김소연, 박준 등의 시를 읽은 젊은 일본 시인들의 반응이 뜨겁다. 일본은 (전통 정형시 형태인) 단가(短歌)나 하이쿠(俳句)는 강하지만 현대시는 약하다. 일본에서 한국은 ‘시의 나라’로 인식된다. (지하철 같은 곳 등) 어디서나 시가 있다는 것을 굉장히 로맨틱하다고 느끼더라.”
―한국문학의 인기가 이어지려면.
“일본에서 인기가 높아지면서 선인세(미리 지급하는 인세)를 과하게 요구하는 사례가 있다. 판매 상황에 따라 주고받으면 되는데 처음부터 많은 돈을 요구하는 것이다. 일본 출판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너무 크다. 단기간에 선인세만큼의 금액을 회수하지 못하면 다음번 작품 계약은 어렵다. 지금 베스트셀러들은 적정한 선인세를 책정한 케이스다.”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1945년 해방 이후 일본에서 한국의 어떤 책들이 번역됐는지를 파악해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고 싶다. 일본 사회에 어떤 한국 책이 이식되어 왔는지, 왜 번역이 되었는지를 모르는 상태다. 일본 사회에 정착한 한류의 기원을 제대로 알려면 이런 부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지난한 작업이라 인력도, 돈도 많이 들어간다. 한국의 대학이나 정부 기관과 함께하고 싶은데 관심을 가져주는 곳이 없어 아쉽다.”
김 대표는 책거리 매장 등을 활용해 한국 작가와 일본 독자의 만남, 문화 공연 등 이벤트를 개최한다. 20∼30명은 매번 참가하고, 인터넷을 활용할 때는 100명 정도가 함께할 때도 있다고 한다. 한국 책, 한국 문화를 “팔기 위해” 김 대표가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는 활동이다. 이런 시도를 확장한 것이 올해 6회째를 맞는 ‘K북페스티벌’이다. 장강명, 황보름, 김애란 등 초대된 한국 작가, 한국 책을 낸 일본 출판사들이 모여 일본 독자들과 만난다. 김 대표는 실행위원장을 맡아 1회 때부터 깊이 관여하고 있다. 올해는 다음달 23∼24일 이틀간 열린다. 정세랑, 김초엽, 이병률, 조예은, 이슬아, 황선우 작가가 초대된다. 주제는 ‘활짝 펼쳐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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