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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는 시민 계급이 성장하고 근대화된 실내 극장이 설립되면서 유료 관람 문화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19세기까지만 해도 극장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1902년 고종 재위 40주년 경축 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최초의 실내 상설 극장 ‘협률사’가 서울 정동에 지어졌다. 유료 관람 문화가 생겨났고, 아날로그 시대 종이 티켓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웃돈을 받고 몰래 파는 입장권과 탑승권을 뜻하는 암표 역시 이런 티켓과 함께 등장했다.

구하기 어려울수록 암표는 통상 정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판매된다. 우리나라도 명절이나 휴가철 고속버스와 열차표 등에서 암표 거래가 흔했다. 비단 특정 국가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중국의 춘제 귀성 열차표 구하기 전쟁은 매년 세계적 뉴스거리다. 발매 시작과 동시에 매진되고, 인터넷의 경우 아예 접속이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공급이 수요에 턱없이 모자란 데다 암표상을 일컫는 ‘황뉴당’(黃牛黨)이 표를 매점매석하는 횡포가 극심했던 탓이다.

한때 서울 잠실야구장 매표소 주변에는 국내 최대 암표상 조직이 활개를 쳤다. 경찰이 눈에 불을 켜고 다녔지만 색출하기는 쉽지 않았다. 적발된 암표상에 대한 가벼운 경범죄 처벌도 단속과 근절을 어렵게 한 이유 중 하나다. 1회 초에 잡혀간 암표상이 3~4회 말쯤 매표소 주변에 다시 나타난다는 말이 유행했을 정도다. 훈방조치나 몇만원 벌금을 내고는 금세 자유의 몸이 됐다는 얘기다. 일망타진은 꿈도 꾸지 못했다.

매크로(macro)는 자주 사용하는 여러 명령어를 묶어서 클릭 한 번으로 처리하도록 만든 소프트웨어다. 최근 몇 년간 이런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구하기 어려운 공연이나 경기 티켓을 미리 확보한 뒤 웃돈을 받아 되파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획사와 소비자 피해가 심각해지자 올 초 국회는 이런 행위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공연법을 개정했다. 법 개정 이후 처음으로 최근 경찰이 매크로를 이용한 암표상 7명을 적발했다. 시장을 교란하는 디지털 암표 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예전 아날로그 전화예약 부활을 거론하는 이가 늘고 있다. 법망이 성글다며 티켓 실명제를 도입하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암표상이 근절되는 날이 오기는 할까.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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