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유난히 길었던 폭염이 끝나고 본격적인 가을이 찾아왔다. 산천이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아름다운 시기지만 방역당국은 긴장의 고삐를 당겨야 할 시간이다. 바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때문이다. AI는 닭, 오리 등 가금류에서 발생하는 겨울철 가축전염병으로 발병 시 대규모 폐사를 유발해 축산농가에게 극심한 피해를 줄 뿐 아니라, 축산물 가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시베리아 등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철새가 국내로 유입돼 농장으로 전파되는데, 올해 8월까지 유럽 등 전 세계에서 총 920건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여전히 치명률이 높은 H5N1형이 유력종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전파력이 높은 질병이라는 점이다. 감염된 닭의 분변 1g에는 백만마리의 닭을 감염시킬 수 있는 고농도의 바이러스가 들어있고 공기를 통한 전파도 가능하다. 더구나 바이러스 종류가 다양하고 변이가 심해 유효한 백신을 적용하기 어렵다. 개별 농장에서 차단방역을 강화하고, 농장 간 바이러스가 전파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방역대책의 핵심이다.
정부는 매년 철새 도래가 예상되는 10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를 특별방역대책기간으로 설정해 철새도래지로부터의 바이러스가 주변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고 있다. 또 축산관련 차량과 종사자 등을 통해 농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차단하는 동시에, AI 발생농장으로부터 타 농장으로의 전파를 막기 위한 농장 예찰체계와 신속한 초동방역 태세를 구축하는 등 3중 방역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축산 관련 종사자들을 비롯한 주민들의 철새도래지 출입을 통제하고, 농장 인근을 매일 소독하며 농장 방문 전 축산차량 소독도 실시한다. 대규모 산란계 농장, 축산밀집단지 등은 위험군으로 정해 집중 관리하고, 닭과 오리의 생산에서부터 유통을 책임지고 있는 축산계열화사업자가 소속 농가의 방역수칙 준수 여부 등도 주기적으로 점검·관리하도록 책임을 강화했다.
이 같은 대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축산농가의 방역수칙 준수와 신속한 신고 등 적극적인 협조가 필수다. 최근 세계동물보건기구(WOAH)에서도 가축방역에서의 민관협업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도 민간 자율방역체계가 활성화되도록 방역관리가 우수한 농장에 대해서는 일시이동중지명령 기간 동안 계란반출 허용, 예방적 살처분 대상 제외 등 인센티브를 확대할 계획이다.
일반 국민들도 동참할 수 있다. 철새도래지 방문을 자제하고, 야생조류 폐사체 발견 시 만지지 말고 지자체 환경부서 등에 즉각 신고하는 것만으로도 가축전염병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
최근 AI 발생 양상이 복잡해지고 있다. 남미, 남극까지 발생지역이 확대되고 물개, 젖소 등 포유류에서의 발생도 보고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축산 관련 종사자가 감염되는 일도 있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팬데믹 후보로 AI를 지목하고 있다. 앞으로 가축전염병은 축산농가의 경영과 소비자 물가뿐 아니라 공중보건에도 굉장히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AI 등 가축전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심을 가지고 힘을 모아야 하는 이유이다. 농식품부는 올겨울 AI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관계부처, 지자체, 생산자 단체 등과 협업하면서 방역관리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박범수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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