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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의마음치유] 진료 환자 많은 의사가 실력도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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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10-09 23:06:03 수정 : 2024-10-09 23: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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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질의 상담 중요한 정신건강의학과는 예외
AI 심리치료사 나와도 아날로그 방식 원할 것

“지금까지 선생님이 진료한 환자가 얼마나 되나요? 몇 명쯤 되는지 말씀해주세요.”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정확히 세어 보지 않았으니까 그냥 “잘 모르겠어요”라고 무심하게 대답하지만, 질문에 숨겨진 의도를 모르는 건 아니다.

환자를 많이 진료할수록 의사의 실력은 좋아진다. 누구나 수술 경험이 많은 외과 의사에게 자기 몸을 맡기고 싶어한다. 예전에 내가 근무했던 종합병원 외래진료실에는 하루 수천에서 많게는 만 명을 훌쩍 넘기는 숫자의 환자가 방문한다. 그 병원 식당가로 점심시간에 내려가면 주말에 유명 백화점 식료품 판매대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대한민국에서 손꼽힐 만큼 수많은 환자를 진료했으니 암 치료와 심장 수술, 장기 이식 같은 고난도 의료도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고, 이제는 누구나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의료기관이 되었다.

그러면 이런 통념이 정신건강의학과에도 해당될까? 내 생각에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전문의 경력 1년의 정신과 의사와 20년, 30년 동안 임상 경험을 축적해온 의사 사이에는 엄연한 실력 차이가 존재할 것이다. 오래 일했을수록 더 많은 환자를 상담했을 테니, 의사가 진료했던 환자 숫자가 그(녀)의 실력을 대변한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가정을 해보자. 두 명의 정신과 의사가 있다. 한 명은 하루 8시간 동안 20명의 환자를 진료한다. 다른 의사는 같은 시간에 환자 100명을 본다. 그렇게 10년이 지났을 때 두 의사의 실력에는 어떤 차이가 생길까? 하루 8시간 쉬지 않고 일한다고 가정했을 때, 평균 4.8분마다 한 명을 상담한 의사가 환자 한 명당 24분을 내어준 경우에 비해 월등히 좋은 정신과 의사일 거라고 예상해도 될까?

같은 수술이라도 탁월한 외과 의사는 그렇지 못한 이보다 짧은 시간에 더 잘해낸다. 산술적으로만 따지면 동일한 시간에 더 많은 수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신과는 다르다. 환자를 척 보면 바로 진단하고 치료 계획까지 촤라락 펼쳐낼 수 있다고 자신하는 정신과 의사도 있겠지만, 실제론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례가 너무 많다. 한 환자를 천천히 길게 봐야만 제대로 치료될 때가 많다. 진단하고 치료하는 시간을 단축하기가 무척 어렵다. 아무리 탁월한 정신과 의사라도 하루에 볼 수 있는 환자 수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환자를 많이 봤다는 의사일수록 한 명 한 명에게 집중한 시간은 짧아지므로 양질의 상담은 못 했을 수도 있다. 정신과 의사의 유능함을 환자 숫자만으로 증명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런 상상도 한 번 해보자. 유능한 정신과 의사가 정보기술(IT)을 활용해서 하루에 수천 명의 환자를 한꺼번에 진료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날로그 방식으로 환자 한 명씩 대면 상담하는 의사에 비해 월등히 많은 환자를 탁월하게 치료해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의사가 좋은 정신과 의사가 아닐까?

다른 의료 분야도 그렇지만 정신건강의학과는 특히 더 노동집약적이다. 사람이 하는 일을 기계로 대신하기 어렵다. 요즘에는 기억력이나 집중력은 컴퓨터로 빠르고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고, 디지털 치료제도 많이 개발되고 있지만 사람의 마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통해야만 정확히 가늠하고 치유할 수 있는 법이다. 머지않아 인공지능(AI) 심리치료사가 나오겠지만 과연 사람들이 자신의 영혼을 컴퓨터 알고리듬이 매만지게 놔두고 싶어할까? 나는 아닐 거라고 본다. 적어도 내 예상은 그렇다.

김병수 정신건강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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