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이송 60분 초과 경우 2023년比 22%↑
응급의료 체계가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응급 환자들이 병원의 수용 불가 통보로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환자들은 부산에서 대전으로, 순창에서 수원으로 300㎞가 넘는 거리의 응급실을 찾아 이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장거리 이동 과정에서 ‘골든타임’을 놓친 환자들은 사망하기도 한다.
10일 소방본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등 부위 40cm 열상으로 긴급 수술이 필요했던 부산 지역 중학생이 수소문 끝에 대전 건양대 병원에서 응급수술을 받았다. 부산에서 대전까지 거리는 약 300km로 차량으로 3시간 가량 걸린다.
건양대병원 등에 따르면 A군(10대)은 지난 6일 오후 5시 40분쯤 119 구조대에 의해 건양대 응급실로 이송됐다. A군은 일요일이었던 당시 집 화장실 세면대에 기댄 채 양치하던 중 세면대가 갑자기 무너지며 넘어졌다. 이 과정에서 좌측 등에서 골반까지 이르는 40cm 부위가 날카로운 세면대 구조물에 베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급대원들은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상처가 깊고 출혈도 심한 A군의 상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해 응급수술이 가능한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병원을 찾았지만 실패했다.
전국 병원을 상대로 ‘응급실 전화 뺑뺑이’를 돌리던 소방당국은 건양대병원에서 수술이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고 A군을 3시간 가량 떨어진 대전으로 이송했다.
휴일 당직 중이었던 건양대병원 흉부외과 김영진 교수는 응급실 연락을 받고, 환자 이송을 허락하는 한편, 곧바로 수술을 준비했다.
김 교수는 “즉시 수술하지 않았다면 감염에 의한 패혈증과 손상 부위 괴사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며 “응급 환자가 찾는 최종 의료기관으로서, 상급종합병원의 사명을 가지고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전북 순창군에서 손목이 절단된 60대 환자가 치료할 병원을 찾지 못해 8시간여 만에 수원으로 이송됐다.
전북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8일 오전 10시56분쯤 순창군 팔덕면의 한 하천에서 정비 작업을 하던 포크레인이 전복됐다.
출동한 구급 대원들은 A 씨의 손목이 절단되고 정강이 부위를 크게 다친 것을 확인하고 인근 원광대병원에 연락했으나, 수술이 어렵다는 답변을 듣고 광주광역시 전남대병원으로 이송했다.
하지만 전남대병원에도 수술할 의료진이 없어 응급처치만 받고 소방 헬기를 타고 전주 수병원으로 옮겨졌다. 전주 수병원도 수술할 여건이 되지 않아 A 씨는 다시 헬기를 타고 240㎞ 떨어진 경기 수원 아주대병원으로 이송됐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응급실을 찾아다니다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며 “전국 병원의 응급실은 정상 운영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구급대가 응급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데 1시간을 넘긴 사례가 지난해보다 2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채현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4일 소방청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공의 파업이 시작된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응급 환자가 발생한 현장과 병원 간 이송 시간이 60분을 초과한 경우는 총 1만3940건이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1만1426건)보다 22% 늘어난 수치다. 대전(164건→467건, 3.3배), 대구(74건→181건, 2.6배), 서울(636건→1166건, 2.3배) 등 주요 대도시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채 의원은 “최근 심각한 의료대란으로 인해 골든타임을 놓치는 환자들이 발생하고 국민의 불안이 높아지는 심각한 재난 상황에 대해 정부는 조속히 사태를 해결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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