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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위원회인데요”… 저녁의 평화를 깨뜨린 한 통의 전화 [심층기획-논픽션 한강 격류 제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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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10-14 07:30:00 수정 : 2024-10-14 03:4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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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았다. 서울 자하문동 집에서 책을 조금 읽고, 집 근처 산책을 조금 했을 뿐이었다. 그저 평화로운 하루였다. 다시 저녁이 되자 아들과 저녁 식사를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니었다. 모자의, 지극히 일상적인 저녁이었다.

 

최근까지 꾸준히 문학 작품을 읽고 있었다. 그는 쓰는 사람 이전에 읽는 사람이었으니까. 조해진 작가의 『빛과 멜로디』, 김애란 작가의 『이중 하나는 거짓말』, 유디트 샬란스키의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 루소의 『식물학 강의』…. 사이사이, 문예지들도 손 가는 대로 펴들기도 했다(김유태, 2024.10.11).

 

마츠 말름 스웨덴 한림원 사무국장. 신화통신∙연합뉴스

저녁 식사를 막 끝낸 오후 7시50분쯤, 그의 휴대폰에서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수신 버튼을 누르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미끄러지듯 밀려왔다. 마츠 말름(Mats Malm) 스웨덴 한림원 상임 사무국장이었다. 말름은 자신을 간단히 소개한 뒤, 그가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음을 통보했다.

 

매우 놀랐다. 아니, 믿을 수 없었다. 노벨문학상이라니. 함께 저녁을 먹었던 아들 역시 놀랐지만, 더 이상 길게 이야기할 여유가 없었다. 그에게도, 한국문학에도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거대한 격류가 밀려오고 있었다.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격식을 갖춘 발표문을 든 마츠 말름 사무국장은 잠시 앞을 보며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South Korean author HanKang(한국의 작가, 한강)!” 말름은 먼저 스웨덴어로 수상자를 발표하고 다시 영어로 호명한 뒤, 특유의 낮고 미끌미끌한 장어 같은 말투로 발표문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한국의 젊은 작가 한강이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순간이었다.

 

#노벨위 “강렬한 시적 산문…현대 산문의 혁신가”

 

한강이 지난 10일 현지시간 오후 1시(한국시간 오후 8시) 한국 작가로선 처음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호명됐다. 2000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역대 두 번째 한국인 노벨상 수상. 더구나 아시아 여성으로 첫 수상이었다.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121명 중 아시아 또는 아시아계는 한강 이전에 6명이 있었다. 인도의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오에 겐자부로, 중국의 모옌, 은 아시아 국적자이고, 중국에서 프랑스로 망명한 가오싱젠, 일본에서 영국으로 이민한 가즈오 이시구로.

 

마츠 말름은 한강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intense poetic prose that confronts historical traumas and exposes the fragility of human life)”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어서 안데르스 올손(Anders Olsson) 노벨문학상위원회 위원장이 등장해 한강의 작가적 여정과 함께 주요 작품을 소개하고 분석한 뒤, 한강을 “현대 산문의 혁신가”라고 상찬했다.

 

“한강은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며, 작품마다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냅니다. 그녀는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습니다.”(노벨상 위원회 홈페이지)

 

노벨상 위원회는 얼마 뒤 한강 작가와 가진 7분짜리 영어 인터뷰 영상을 유튜브 계정에 공개했다. 한강 작가는 공개된 영상 인터뷰에서 침착하고 낮은 목소리로 “매우 놀랍고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영상에는 “놀랐다(surprised)”는 표현이 다섯 번이나 나온다. 그는 노벨문학상을 어떻게 축하할 계획이냐고 묻자, 아들과 함께 차를 마시면서 조용히 축하하고 싶다고 말했다. “차를 마시고 싶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래서 아들과 차를 마시면서 오늘 밤 조용히 축하하고 싶다.”(임지우, 2024.10.11)

 

#“세계문학으로서 한국문학 시작”

 

주요 외신들은 일제히 한강의 수상 소식을 긴급 타전했다. 특히 한국 작가의 첫 노벨문학상 수상이나 아시아 첫 여성 작가의 수상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AP통신은 이 소식을 선정 이유와 함께 긴급 뉴스로 보도했다.

 

국내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수상 소식에 전해지자 국정감사가 한창이던 여야 의원들도 박수를 치거나 환호성을 지르는 등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시민들 역시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여야 주요 정치인들이나 유명 인사들은 일제히 축하 성명을 내거나 글을 게재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누구보다 환영하고 기뻐한 것은 다름 아닌 한국 문학계였다. 그 동안 한국 문학은 세계문학으로 온전히 자리를 잡지 못한 채 독자 감소와 저변 축소, 위상 추락으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이 같은 구조와 상황을 타개하고 반전시킬 기회를 제공할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작가 개인의 비범한 영예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그동안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한국문학에 대한 세계적 인정으로 이해됐다. 변방의 언어인 한글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문학이 비로소 세계문학의 중심에 진입했음을, 세계문학으로서 한국문학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시인인 곽효환 전 한국문학번역원장은 “지난해부터 한국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말씀드렸는데, 제 예상보다 더 빨랐다”며 “이번 수상은 한국문학을 굉장히 중요한 세계문학계의 일원으로 인식하게 됐음을 보여준다. 이제부터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이 시작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유종호 문학평론가 역시 “K팝과 영화, 드라마 등 한국 문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가운데, 이번 수상은 작가의 개인적인 영예이자, 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적인 인정이다. 우리 모두 축하해야 할 일”이라고 기뻐했다.

 

오랫동안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명돼온 한국 문단의 거목 황석영 작가 역시 “놀랐다. 그리고 아주 기쁘다”며 축하의 말을 발표했다. “무엇보다도 한강의 작품들이 억압과 폭력 아래 스러진 사람들과 살아남은 자들의 깊은 상흔을 어루만지고 기억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와 다른 어느 누군가의 작품에 주어지지 않아서 더욱 다행스럽고 기쁜 일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한다!”(사지원, 2024.10.12)

 

심지어 대표적 문인단체인 한국작가회의도 이튿날 이례적으로 논평을 내고 한강 작가의 대표작과 작품 세계를 간략히 분석한 뒤,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 문학의 “일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은 단순히 대한민국 국적의 작가의 수상이라는 의미를 넘어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문학 본연의 역할을 되새기게 한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의 일원으로서 분명한 몫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대 사건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작가 개성에 대한 문학적 보상이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문화의 토양을 일궈온 수많은 작가들의 땀이 스며있는 성과이기도 하다. 한국작가회의는 한국작가회의 회원인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진심을 담아 축하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 AP∙연합뉴스

#왜 찬쉐도 황석영도 아니고 한강이었을까

 

수상자 발표 직전까지만 해도 한강은 유력 후로로 거의 거론되지 않았다. 여러 온라인 베팅사이트에서 올해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작가로는 장르를 뛰어넘는 작품을 쓰는 중국의 전위적 작가 찬쉐(残雪)나 호주 소설가 제럴드 머네인 등이 꼽혔다. 발표 직후, 서방의 많은 언론이 “놀라운 일”이라고 평가를 쏟아진 이유다.

 

한국 문학사에서도 놀라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한국 문단에는 이미 황석영이나 이문열 등을 비롯해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어이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거머쥐었다. 왜 한강이었을까. 왜 찬쉐도, 황석영도 아닌, 한강이었을까. 문학평론가 김명인은 자신의 SNS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왜 황석영이 아니고 한강이었을까? 황석영 자신이 고은과 더불어 오랫동안 노벨상에 공을 들여온 것은, 좀 씁쓸하지만, 다 아는 사실이고, 앞에서도 말했듯이, 황석영은 오랫동안 한국의 대표 작가로서 ‘군림’해왔기 때문에 그가 한국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가 되더라도 하등 이상할 일이 없다. 하지만 확실히 황석영은 한강에 비해 낡았다. 그는 알다시피 정통 리얼리즘 작가다. 그리고 그만큼 근대소설의 문법에 충실한 작가라는 뜻이다. 근대소설은 ‘성숙한 남성성의 형식’이며 이미 그 여정을 알고 떠나는 주체의 여행이다. 황석영의 대표작인 「객지」나 「삼포 가는 길」의 주인공들은 내일을 모르나, 작가는 그들이 내일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 방황은 사실은 계산된 방황. 여행이 끝날 줄 알고 떠나는 여행이다. 근작들인 『손님』과 『철도원 삼대』에 이르면 죽은 자들이 무시로 등장하여 산자들을 이끄는 ‘초현실’이 등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작품 속 인물들의 운명은 ‘선험적 진리’가 견고하게 장악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19세기 이래 근대소설의 전형적 상황이다.”

 

김명인은 황석영이 한국의 대표 작가로서 많은 문학적 성취를 이뤘기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더라도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근대소설의 전형으로서 “한강에 비해 낡았다”고 지적한다. 반면 ‘기도와 애도의 정치학’이라 부를 수 있는 한강의 문학은, 근대소설의 ‘미달태’이지만 오히려 새롭고 탈근대적 글쓰기의 전형이자 당대 주류 문학이라는 취지다.

 

“한강의 소설들은 이와 다르다. 그의 소설들에는 질문들은 무성하나 대답은 없다. 쓰고 있는 작가 역시 대답을 모른 채 질문의 형식으로 소설을 끌고 간다. 이것은 탈근대, 혹은 후기 근대적 글쓰기의 전형이다. (서구에서는 이미 20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게다가 한강 소설들의 여성인물과 여성화자들은 오래도록 확고한 진리의 세계(근대의 가부장적 남성들의 세계)에서 밀려나 있던 주변인, 소수자, 타자들의 형상으로, 그들의 언어는 늘 진리에서 비껴난 형식으로 발화되고 전달된다. 『채식주의자』의 주인공은 육식의 세계에서 보장받지 못해 소멸해가는 소수자 여성의 존재성을 스스로 식물이 됨으로써 겨우 지켜낸다. 그리고 이처럼 주류의 언어를 가지지 못하고 마멸되어가는 여성 등 소수자들의 존재성이 거대한 국가폭력을 만났을 때 어떻게 자기를 보존할 수 있는가를 묻는 소설들이 바로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이다. 나는 그것을 ‘기억과 애도의 정치학’이라고 부른 바 있다. 한강의 소설은 루카치가 말한 근대장편소설의 미달태이고, 기본적으로 루카치가 단편소설을 이야기할 때 겨우 인정해준 ‘서정시’적인 성격을 가진다. 『채식주의자』나 『소년이 온다』가 하나의 장편 서사라기보다는 몇 개의 작은 서사들의 연쇄로 이어진다는 것, 『작별하지 않는다』 역시 사실과 몽환 사이의 어디쯤에 있다는 것 등이 것이다. 그것은 객관적 진리에 의해서는 보증될 수 없는 ‘미숙한 주체’들의 산문형식이다. 하지만 그 ‘미숙성’에서 새로운 언어가, 형식이, 사상이 탄생한다. 그런데 요즘 한국소설은 이런 형식들이 대세를 이루고 그 대부분이 젊은 여성작가들에 의해 생산되고 있다. 이는 오래도록 민족 민중 계급 등으로 표상되어온 한국문학의 고질적 남근주의, 가부장주의에 대한 집단적 반란이라 할 수 있으며, 나는 이것이 어느덧 21세기 한국소설의 주류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강은 1970년생으로 이러한 당대 주류 한국소설의 리더, 맏언니의 자리에 있다. 노벨문학상 위원회는, 우연인지 모르나, 한강의 이러한 문학적 위상을 귀신같이 알아채서 그에게 노벨상을 안겨주었다.”(김명인 문학평론가의 페이스북 게시글)

 

한강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한국 문학에 지울 수 없는 영감을 주었지만, 이를 위해선 자신의 삶과 인생, 문학의 격류를 먼저 건너가야 했다. 그리하여 한강은 삶과 문학으로 흘러가야 했다. 온몸으로, 격류로.(→제2화에 계속)

 

*참고문헌은 연재가 끝난 뒤 정리해 일괄 게시 예정입니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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