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야 ‘김건희 국감’ 구호 내세운 영향
일부 의원 비판 넘어 비난·고성 논란
피감기관 인사도 의원 지적에 욕설도
정쟁에 성과 미미 ‘무용론’ 다시 고개
하루종일 ‘김여사 무혐의 처분’만 질의
김문수 ‘선조 국적은 일본’ 발언 공방에
환노위 국감 질의시간 5분 → 3분 줄여
일부 의원은 질의 빙자한 ‘지역구 민원’
국감 도중 ‘맛집 리스트’ 작성한 의원도
“조용히 하세요, 묻지도 않았잖아.”(더불어민주당 이성윤 의원), “소리 지르지 마십시오.”(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18일 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서울중앙지검 등 국정감사 현장. 이날 국감 내내 야당이 검찰의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무혐의 처분에 대한 공세를 가한 가운데 막바지에 “살아 있는 권력을 불기소해놓고 아침부터 지금까지 침이 마르도록 변호하고 있다”는 이 의원 비판에 이 지검장이 “변호하는 게 아니라 수사결과를 설명드리는 것”이라 반박하자 이 의원이 “조용히 하라”며 고성을 내질렀다. 결국 정청래 법사위원장이 개입해 이 의원에게 “흥분을 가라앉히시라”며 중재한 뒤에야 질의가 다시 이어질 수 있었다. 문재인정부 시절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낸 이 의원은 “후배님들, 제가 부끄럽다”고 하자, 이 지검장이 “제가 사건을 제대로 처리했다는데, 왜 자꾸 부끄럽다고 말하냐”며 항의하기도 했다.
22대 국회 첫 국감은 이런 식의 ‘버럭 국감’이 대세다. 검찰 무혐의 처분 등 김 여사 의혹이 연일 터지는 터에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김건희 국감’을 구호로 내건 영향이 커 보인다. 자연스레 비판의 수위가 올라가다 보니 일부 야당 의원들은 막말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덩달아 피감기관 안하무인도 두드러져 일부 인사는 의원 지적에 욕설로 답해 논란이 됐다.
문제는 이런 식의 정쟁이 국감 중 차지하는 비중은 비대한데 그 성과라 볼 만한 건 미미하단 것이다. 하루종일 김 여사 무혐의 처분을 놓고 질의가 이어진 18일 서울중앙지검 국감에서 그나마 새로 확인된 거라 볼 만한 건, 검찰이 17일 브리핑에서 김 여사 도이치모터스 의혹 관련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단 취지로 설명했으나 실제 김 여사 관련해 영장이 청구된 건 코바나콘텐츠 관련 사건으로 도이치모터스 의혹 부분에 대해서는 영장을 청구하지 않았단 사실 정도였다. 언제나 나오는 ‘맹탕 국감’ 꼬리표가 따라붙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한 국회 관계자는 20일 통화에서 “이번 국감은 사실상 ‘김건희 블랙홀’에 잡아먹혔다”며 “김 여사 의혹과 거리가 있는 상임위도 같이 분위기에 휩쓸리다 보니 정책 질의는 후순위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환경노동위원회가 10일 진행한 고용노동부 국감이다. 고용부 국감은 오전 10시에 개시했지만 김문수 고용부 장관의 이전 ‘일제강점기 선조들의 국적은 일본’ 발언을 놓고 공방이 오가면서 사실상 정상적인 질의는 8시간 가까이 지난 오후 6시쯤에야 재개되는 일이 있었다. 야당 측의 사과·해명 요구에 김 장관은 ‘일본 국적은 역사적 사실’이란 뜻을 굽히지 않으면서 퇴장 조치당했다. 저녁부터 진행한 국감에는 장관이 자리하지 않았고 의원들의 질의시간도 단축됐다. 한 환노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질의시간을 5분 준다고 했다가 결국 3분까지 줄였다. 밤새 준비한 질의가 결국 시간이 부족해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맹탕 국감의 이유를 단지 정국 탓만 할 순 없어 보인다. 의원 개개인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일부 의원은 질의 중 ‘국정에 대한 비판·감시’라는 선을 넘어선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민주당 양문석 의원은 10일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감 중 지난해 김 여사가 참석한 국가 무형문화재 예능 전승자 오찬간담회에서 국악인의 가야금 연주가 진행된 걸 두고 “(청와대를) 기생집을 만들어 놨나. 이 지×들을 하고 있다”고 해 국악인 측 반발을 샀고 결국 14일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 사과했다.
민주당 정동영 의원은 국감 중 사정기관의 방송통신위원회 파견 문제를 지적하면서 공무원들을 일렬로 ‘줄세우기’ 시켜 갑질 논란이 일었다. 그는 7일 과방위 국감에서 검찰, 경찰, 감사원 등 사정기관 공무원 17명을 일렬로 세우고 “방통위는 정권의 ‘특별수사본부’로 전락했고 여러분은 정권의 도구로 일하고 있다”고 다그쳤다. 민주당 윤종군 의원은 7일 국토교통부 국감에서 중고거래 플랫폼의 허위매물 거래 문제를 지적하려는 차원에서 박상우 장관 관용차를 양해 없이 ‘당근마켓’에 매물로 올렸다가 논란을 샀다.
국감에서 의원이 본인 사건 관련 질의를 하거나 사실상 질의를 빙자한 ‘지역구 민원’을 하는 모습도 나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민주당 이상식 의원은 11일 경찰청 국감에서 본인 선거법 사건과 관련해 질의했다가 여당 측 비판을 받았다 이 의원은 국감 전 본인을 수사한 경찰을 증인으로 신청했다가 논란이 일자 하루 만에 철회하기도 했다.
김 여사 의혹·이재명 사법리스크 등으로 정쟁이 끊이지 않는 법사위에서도 7일 법원행정처 국감이 열렸을 땐 일부 의원들이 지역구 법원 유치에 나서는 모습이 연출됐다. 부산 서·동구를 지역구로 둔 국민의힘 곽규택 의원은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에게 “부산 출신이지 않냐”며 해사법원 부산 설치 협조를 구했고, 전북 전주을이 지역구인 민주당 이성윤 의원도 “우리 전주지방법원엔 가정법원이 없다. 전북 도민들 소외감이 커진 만큼, 처장님이 설치해 달라”고 했다.
어김없이 이번 국감에도 의원들의 ‘딴짓’이 실소를 짓게 했다. 국민의힘 신성범 의원은 7일 과방위의 방통위 국감에서 다른 의원 질의 중 휴대전화에 ‘맛집 리스트’를 작성하는 사진이 한 언론에 보도돼 논란이 됐다.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15일 환노위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출석한 걸그룹 뉴진스 하니와 별도 면담을 한 사실이 도마에 올랐고, 최 위원장은 “뉴진스 사태는 방송을 소관하는 과방위와도 연관되는 사안”이라고 해명했다.
의원뿐 아니라 일부 피감기관 인사도 국감 중 부적절한 처신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된 상태인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은 7일 국감에서 최민희 위원장에게 선서문을 제출한 뒤 목례 대신 악수를 청해 ‘기싸움’을 벌였다. 대통령경호처장 출신인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8일 국감에서 야당 의원이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의 답변 태도를 지적하자 “군복 입었다고 할 얘기 못하고 가만히 있는 건 더 병×”이라고 해 논란을 자처했다. 황인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1국장은 10일 행안위 국감에서 야당 요구를 거부한 채 안경·마스크 착용을 고수했다가 퇴장당했다.
한편 후반부에 접어든 국감은 전반부 못지않은 정쟁 국감이 예고되고 있다. 당장 김영선 전 의원 회계책임자로 김 여사 공천 개입 의혹을 제기한 강혜경씨가 21일 법사위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민주당 강유정 원내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남은 국감도 김건희 국감, 끝장 국감”이라고 예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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