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효율적이더라도 감수
韓은 사고 대비 의식 부족
근본적인 변화 이끌어내야
일본에서 3년 정도 살면서 인상적인 것 중에 하나가 안전을 위한 기초 질서의 준수와 사고 방지를 위한 대비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은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집 근처 지하철을 타려면 좁은 폭의 횡단보도 2개를 건너야 한다. 성인 보폭으로 5∼6걸음이면 건넌다. 서두르지 않아도 5초 정도면 충분하다. 오가는 차들이 많지 않아 굳이 필요할까 싶은데 첫 번째 횡단보도에는 신호등이 있고, 그 신호를 무시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신호등이 없는 두 번째 횡단보도에서는 보행자 우선이 지켜진다. 횡단보도로 걸어오는 사람만 보여도 속도를 줄이거나 일단 멈추는 차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거리에서 자주 보는 공사현장에서는 안전요원들이 두드러진다. 짧은 거리라도 돌아가게 만든 게 미안하다는 듯 정중한 몸짓으로 뻔히 보이는 진행 방향을 알려준다. ‘공사’라는 표현이 거창하게 느껴지는 조그만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초쯤인가 작업자는 한 명인데 안전요원은 2명인 것을 본 적이 있다. 차로에 면한 보행로에서의 작업이었다. 안전요원 한 명은 보행로에, 다른 한 명은 차로에 서서 역할 분담을 하고 있었다. 지금도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는 장면이다.
꽤 오랫동안 이런 모습이 잘 이해되질 않았다. 명백하게 비효율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차량 통행이 많지 않고, 몇 초 정도면 건널 수 있는 횡단보도라면 보행자나 차들이 상황을 봐가며 오가는 게 여러모로 편리하다. 공사현장 안전요원 숫자를 줄이면 비용이 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거리에선 안전을 위해서라며 불편, 비용을 감수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한 장면을 자주 목격한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답답하기도 했다.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는 걸 보면서 이런 생각이 맞는지 되돌아보게 됐다. 서울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엉켜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던지라 더 충격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대규모 참사가 되풀이되는 데는 안전한 사회를 불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어졌다.
지난해 1월2일 발생한 하네다공항 비행기 충돌사고는 안전을 위한 기초적인 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줬다. 당시 일본항공(JAL) 여객기와 해상보안청 항공기가 충돌해 폭발, 화재로 이어졌다. 사고로 항공기 승무원 5명이 숨졌지만, 여객기 탑승자 379명은 전원 탈출에 성공했다. 지난해 12월 일본 운수안전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과거 항공기 사고의 교훈을 잊지 않은 것이 ‘기적의 탈출’을 가능하게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항공은 2016년 홋카이도 신치토세공항에서 발생한 여객기 화재 사고 이후 원활한 이동에 방해되지 않도록 비상시 승객들이 개인 수하물을 꺼내지 않도록 안전지침을 개정했고, 하네다공항 사고에서 적용됐다. 비상 탈출 훈련을 승무원들뿐 아니라 지상 근무 직원들에게 확대한 것도 효과를 봤다. 사고 여객기에 탑승하고 있던 직원 2명이 다른 승객들에게 탈출 방법을 알려주면서 혼란을 줄였다고 한다.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겠으나 운행 안전을 위한 기초적인 사항들이 지켜지지 않은 정황들이 나오고 있다. 참사 원인으로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가 지목되는 가운데 오래전부터 무안공항에서 버드 스트라이크 우려가 제기됐고 실제 다른 공항에 비해 발생빈도가 높았다. 하지만 사고 당일 야외에 배치된 조류 퇴치 인력은 1명뿐이었다고 한다. 피해를 키운 것으로 지목되는 콘크리트 둔덕은 설치규정에 맞는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대형 참사는 낯설지 않다. 세월호 침몰 사고는 여전히 끔찍한 기억이다. 좀 더 멀리 가면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가 떠오른다. 참사의 원인을 두고 수많은 말이 오갈 때 언제나 ‘인재’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그것의 구체적인 내용은 사고마다 다르지만 저변에는 기초적인 안전수칙 준수, 사고 대비 부족이 공통적으로 깔려 있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참사는 또 다른 형태로 반복될 것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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