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의 ‘여론조사 조작’ 사건의 파문이 커지고 있다. 명씨가 2021년 9월 국민의힘 대선 경선 때 윤석열 후보 수치가 더 나오게 해야 한다고 지시한 녹취록이 공개된 것과 관련, 여론조사업체 직원이었던 강혜경씨가 어제 법사위 국감 증인으로 출석해 진실 공방을 벌였다. 이번 사태는 무자격 업체가 조작된 여론조사로 정치권에 줄을 대고 그 대가로 자리와 이권을 요구한 것이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정치 브로커에게 놀아나는 정치권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명씨의 수법은 무척 지능적이다. 녹취록에 따르면 명씨는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국면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미래한국연구소 실무자 강씨에게 “윤석열이를 좀 올려서 홍준표보다 한 2%(포인트) 앞서게 해달라”고 지시했다. 젊은층의 응답계수를 올리라는 구체적 방법까지 제시했다. 실제로 여론조사 결과는 그대로 나왔다. 공표하지 않았더라도 데이터를 조작한 건 정치공작이고, 용납할 수 없는 범죄다. 명씨는 또 자신이 대표로 있는 창원 지역 인터넷 언론사 의뢰로 여론조사를 돌렸고, 이를 통해 사전신고 대상에서 빠져나갔다. 여론조사업체와 언론사를 같이 경영하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에 신고하지 않아도 되는 제도의 허점을 악용한 것이다.
문제는 전국에 이런 곳이 한두 곳이 아닐 것이란 점이다. 여심위에 따르면 지난 4월 22대 총선 때 등록된 여론조사 2531건 중 1524건(60.2%)이 사전신고를 면제받았다. 명씨처럼 조작된 여론조사를 내세워 출마자를 꼬드기고 이권을 챙긴 사례가 더 있을 가능성이 크다. 얼마 전 부산 금정구청장 재보궐 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22%포인트 차로 승리했는데 민주당을 지지하는 김어준씨가 만든 여론조사 업체는 민주당 후보가 3%포인트 앞선다는 결과를 공개해 논란이 일었다. 이 정도 오차면 여론을 왜곡한 것과 다름없지 않나.
여론조사 조작·왜곡은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심각한 사안이다. 정치 브로커들의 불법·불공정 선거 여론조사를 더는 방치해선 안 될 것이다. 검찰은 조속히 명씨와 관련자들을 조사해 여론조사 조작의 실체를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법망을 교묘히 피해 가는 미공표 여론조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도 시급하다. 여심위는 여론조사 사전신고 의무대상에 모든 인터넷 언론사를 포함하는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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