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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은 시간 연락은 언제나 달갑지 않다. 나쁜 소식을 전하거나 급한 일이 생긴 경우가 대부분이다.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를 앞둔 이달 초 어느 날, 밤 11시가 넘어서 휴대폰이 울렸다. 한 야당 의원 밑에서 일하는 보좌관 A씨의 메시지였다. A씨와는 업무적인 이유로 두어 번 연락을 나눈 적 있는 사이다.

A씨는 “소관 기관으로부터 받은 데이터를 전달할 테니 기사를 써 달라”고 말했다. 익일 새벽 2시까지 기사가 나가야 한다는 당부도 함께. 빌린 돈을 받으러 온 채권자 같은 태도였다. 숫제 데스크 행세를 하는 그가 못마땅해 한소리 했더니 “‘윗선’에서 접선해 보라고 했다”며 뒤늦은 사과의 말을 전했다.

백준무 사회부 기자

중요성을 잔뜩 강조했던 A씨의 말과 달리, 건네받은 자료는 정작 대단하지 않았다. 굳이 야심한 시간에 허겁지겁 처리해야 할 내용은 분명 아니었다.

최근에 만난 한 정부 부처 관계자는 “이번 국감은 유난히 힘들다”며 피로감을 호소했다. 임기 첫해 국감에서 잔뜩 기합이 들어간 초선 의원들이 언론의 주목을 받으려 엄청난 양의 자료를 요청하는 일이 관행처럼 굳어졌는데, 22대 국회는 유독 정도가 심하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한 지인은 “국감 자료 요청 때문에 원래 업무는 마비될 지경”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뚜렷한 문제의식 없이 “일단 달라”는 식의 무차별적 자료 요청에 밤을 새우는 공무원들이 많다. 자료 준비에 행정력이 낭비되는 동안 업무 지연으로 인한 불편은 결국 시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시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세금으로 돌아가는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의 살림살이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은 의무이자 권리다. 때로는 국감을 통해 중대한 비위나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한다.

국감 현장에서 탄탄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날카로운 질의를 던지는 의원들이 ‘스타 정치인’으로 발돋움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올해 국감 종료를 하루 앞둔 24일, 이날까지도 기억나는 인상적인 장면은 딱히 없다. 여야 의원 사이의 고성과 이로 인한 파행만 언제나처럼 반복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걸그룹 뉴진스 멤버 하니를 불러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해 물었다. 중대재해사고로 올해에만 4명이 숨진 한화오션 거제사업장과 관련해 증인으로 출석한 정인섭 사장에 쏠리는 눈길은 그만큼 줄었다. 출석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행정안전위원회는 한국 프로축구의 슈퍼스타 제시 린가드를 참고인으로 채택했다. 올해 2월 한국 땅을 처음 밟은 린가드와 축구장 잔디 관리 부실 문제를 논한다는 명목이었다.

국감을 지켜보며 기분이 상하는 것은 나 혼자만은 아닌 듯하다. 27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국정감사NGO모니터단은 22대 국회 첫 국감 성적을 ‘D-’학점으로 매기며 ‘역대 최악’으로 평가했다. 21대 국회 마지막 국감은 ‘C’학점이었다. 평범한 대학생이었다면 제적됐을 낙제점이다.


백준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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