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북한군의 파병을 사실상 시인하면서 북러간 유사시 군사 조약을 언급했다.
크렘린궁이 공개한 기자회견 발언문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 타타르스탄공화국 카잔에서 브릭스(BRICS) 정상회의 결산 기자회견에서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정황을 뒷받침하는 위성 사진에 대한 견해를 묻자, 북한군이 러시아군을 지원할 병력을 파견했다는 보도를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회견에서 "위성사진은 중대한 것이고, 만약 사진들이 있다면 이는 무언가를 반영한다"고 밝혔다.
또 "우리와 조선민주주의공화국(DPRK)의 관계와 관련, 여러분은 전략적 동반자 협정이 비준된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오늘 (비준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그 조약에 제4조가 있다"며 "우리는 북한 지도부가 우리의 합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절대 의심하지 않았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할지, 어떻게 할지는 우리에게 달려있으며, 우리는 이 조항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먼저 제4조의 이행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북한 친구들과 접촉하며 이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아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서 푸틴 대통령이 언급한 '협정'이란 지난 6월 19일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에서 체결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북러조약)을 말한다.
푸틴 대통령은 이달 14일 조약 비준안을 하원에 제출했고, 러시아 하원은 이날 본회의에서 이를 심의,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푸틴 대통령이 북한군 파병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우크라이나, 한국 정보 당국을 비롯해 미국에서도 북한군의 파병 정황을 잇달아 발표했지만, 러시아는 이를 '가짜 뉴스'라고 일축해왔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러한 푸틴 대통령의 발언을 보도하면서 푸틴 대통령이 북한군이 러시아에 파병됐음을 확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당국이 그동안 부인해왔던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사실상 인정하면서, 북러조약 제4조를 빌어 그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든 것이다.
'전쟁상태'라는 유사시를 상정, 양국 간 의무사항을 명시한 제4조는 북러 조약에서도 핵심으로 꼽힌다.
북한이 공개한 조약문에 따르면 제4조는 "쌍방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러시아 연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규정했다.
당시 이를 두고 북러간 '유사시 자동군사 개입' 조항이 복원되고, 사실상 '군사동맹'을 대내외에 천명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북한은 1961년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과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다가 소련 해체 후인 1996년 이를 폐기한 바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1961년과 달리 조약에 유엔헌장 51조와 국내법 절차를 명시한 데 주목, 양측 협력 수위가 높긴 하지만 자동 군사개입으로 볼 수 없다는 해석도 있다.
일부 서방 전문가는 북러조약을 언급한 데 대해 일단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 하우스의 러시아 프로그램 책임자 제임스 닉시는 FT에 이를 "자기 정당화의 허세"라고 말했다.
닉시는 "러시아는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법적 궤변이 능하다는 것을 역사적 증거들이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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