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성과 먼 음악으로 큰 사랑 받아
1960∼1970년대를 풍미한 미국 록밴드 ‘그레이트풀 데드’(Grateful Dead)의 창립 멤버이자 베이스 기타 및 재즈 트럼펫 연주자인 필 레시가 8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레시는 생전에 언론 인터뷰나 팬 미팅 행사 등을 거의 하지 않아 ‘은둔의 연주자’로 불렸다.
25일(현지시간) AP 통신에 따르면 레시의 가족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그의 사망 사실을 알렸다. 고인은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직접적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는데 고인은 생전에 전립선암, 방광암 등으로 투병했고 심각한 C형 간염을 앓아 간 이식 수술을 받은 적도 있다.
레시는 1940년 캘리포니아주(州) 버클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는 등 처음에는 클래식 연주자로 음악 인생을 시작했다. 14세 때에는 관악기 트럼펫도 섭렵하는 등 다재다능한 청소년이었다. 20세가 되기 전 ‘오클랜드 심포니 오케스트라’ 교향악단의 연주자로 선발되기도 했다.
하지만 레시는 20대 초반 무슨 이유에서인지 악기 연주를 그만두고 트럭 운전사, 소규모 라디오 방송국의 음향 기술자 등을 전전했다. 그러다가 1965년 기타 연주자 제리 가르시아(1995년 사망)의 눈에 띄어 음악에 복귀하게 되었다. 당시 새로운 록밴드 창설을 꿈꾸던 가르시아는 레시에게 베이스 기타를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레시는 “나는 베이스 기타를 연주할 줄 모른다”며 거절했으나 가르시아가 “바이올린을 연주한 경험이 있으면 충분하다”는 말로 설득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레시는 단 7시간 동안 레슨을 받은 뒤 베이스 기타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1965년 레시(베이스), 가르시아(기타), 그리고 밥 위어(보컬), 빌 크루츠먼(드럼) 이렇게 4명의 멤버가 록밴드 ‘그레이트풀 데드’를 결성했다. 이들은 1967년 밴드 이름과 같은 ‘그레이트풀 데드’를 시작으로 ‘라이브/데드’(1969), ‘아메리칸 뷰티’(1970), ‘유럽 72’(1972), ‘스틸 유어 페이스’(1976), ‘고 투 헤븐’(1980), ‘인 더 다크’(1987) 등 수많은 앨범을 발표했다.
‘그레이트풀 데드’의 음악은 1960년대 미국 사회를 지배한 히피 사조의 상징으로 통한다. 상업성과 철저히 거리를 두는 태도로 한때 ‘1960년대 정신의 표상’이란 칭송을 듣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3500만장의 음반이 팔려나갔고 1994년에는 미국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예를 안았다. 멤버 일부가 교체되는 우여곡절 속에서도 30년간 음반 발표와 라이브 공연을 이어다가다 1995년 7월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팀의 리더나 다름없던 가르시아가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다른 멤버들이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후 밴드 창설 50주년 및 활동 중단 20주년을 맞은 2015년 7월 시카고에서 3일에 걸친 특별 공연을 했다. 당시 75세이던 레시 등 생존해 있는 멤버들이 참여해 노장의 투혼을 불살랐다. 입장권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데도 전석 매진을 기록해 새삼 명불허전을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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