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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감사원법이 개정됐다. 기존에는 감사원장 정년이 65세였는데 이를 70세로 상향한 것이 핵심이었다. 한승헌 당시 감사원장이 입법을 힘껏 밀어붙였다. 1934년 9월 태어난 그는 김대중(DJ)정부 출범 이후인 1998년 8월 감사원장에 임명됐다. 64세에 감사원장이 되었으니 불과 1년 1개월 남짓 재직하고 정년퇴임할 운명이었던 셈이다. 헌법이 정한 감사원장 임기가 4년이란 점을 감안하면 다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감사원장은 대법원장 정년이 70세라는 점을 들어 정년 연장을 강력히 주장했다. “경험 많고 덕망 높은 분을 감사원장으로 모시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DJ도 이를 적극 지원했다. 결국 입법이 성사됐으나 개정 법률은 한 감사원장에게 적용되지 않았다. 그는 1999년 9월 정년을 맞아 감사원을 떠나며 “정년을 연장해놓고 퇴임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사법부의 최고위직인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의 정년은 오래 전부터 70세다. 그런데 그 밑의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정년은 한동안 70세보다 다섯 살 적은 65세였다. 이를 두고 대법원장이나 헌재소장이 대법관들, 그리고 재판관들을 ‘통솔’하는 것이 한층 수월하게 하려는 의도라는 평가가 많았다. 장유유서 문화가 남아 있는 한국 사회에선 아무래도 연장자의 말에 연하자들이 귀를 기울이고 따르는 경향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비판적인 법조인들 사이에선 “대법원장이나 헌재소장이 나이를 앞세워 대법관, 재판관들을 이끌려고 해서야 되겠느냐”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에 국회는 2011년 법원조직법을 고쳐 대법관 정년을 70세로 늘렸다. 3년 뒤인 2014년에는 헌법재판소법도 개정돼 재판관 정년 역시 70세가 되었다.

 

요즘 우리 사회 최대 관심사들 중 하나가 정년 연장이다. 행정안전부가 소속 공무직 근로자 2300여명의 정년을 기존 60세에서 최장 65세까지 올리기로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당장 2025년이면 한국은 전체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정년 연장 찬성론자들은 “노동력 부족으로 국가가 쇠락하는 것을 막으려면 고령 인구를 활용해 생산성 공백을 메우는 게 최선의 방책”이라고 주장한다. 아예 ‘노인’(老人)의 기준부터 바꾸자는 제안도 들려온다. 현재 우리나라의 노인 연령 기준은 1981년 제정된 노인복지법에 따라 65세로 여겨진다. 요즘 65세를 훌쩍 넘긴 이들 중에도 장년 못지않은 건강을 과시하는 이가 얼마나 많은가. 대한노인회는 지난 21일 법적 노인 연령을 현행 65세에서 1년씩 10년간 단계적으로 올려 75세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정부에 제시했다. 이렇게 되면 정년을 앞둔 나이 지긋한 대법원장, 헌재소장, 대법관, 재판관도 법적으로는 노인이 아니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청사 전경. SNS 캡처

대법관이나 재판관 같은 최고위급 법조인이 아닌 일선 판사의 정년은 65세다. 사실 예전에는 법관의 정년이라는 게 별 의미가 없었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나 대법관 승진에서 사법연수원 동기생 또는 후배한테 밀리면 정년이 몇 년 남았든 미련없이 법복을 벗고 변호사 개업을 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하지만 로스쿨 개원 후 변호사 수가 급증하며 법률시장에서의 경쟁이 너무 치열해졌다. 그러자 법관들 사이에 정년까지 일하고 퇴임하는 게 차라리 낫다는 인식이 확산하기 시작했다. 자연히 정년 연장론은 판사들이 듣기에도 귀에 솔깃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법원 일각에는 부정적인 시선도 있는 듯하다. 법관의 경우 법원장이 아닌 이상 그만둘 때까지 자신의 이름으로 판결문을 써야 하는 직업인데, 고령의 판사가 너무 많으면 아무래도 재판 효율성이 떨어지고 소송 당사자들의 손실도 커진다는 논리에서다. 사회 일각의 정년 연장 논의와 달리 법관의 정년은 고려해야 할 사안이 많은 복잡한 문제인 듯하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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