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니키아’, ‘솔로르’ 역으로…2010년 유니버설발레단 ‘라 바야데르’ 이후 14년 만
세계적 발레단 수석무용수로 무용계 최고 권위 ‘브누아 드 라 당스’ 수상 스타들 보러 순식간 표 매진
지난 27일 저녁 8시쯤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2층 귀빈실.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에투알(수석무용수) 박세은(35)은 중국 공연을 마치자마자 날아온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민(32)에게 달려가 반갑게 포옹했다. 그리웠던 혈육을 만난 오누이처럼 서로 얼싸안고 활짝 웃었다.
두 사람은 국립발레단이 30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라 바야데르’(유리 그리고로비치 안무)에 주인공 니키아와 솔로르 역으로 출연한다. 세계적 발레단의 수석무용수에다 무용계 최고 권위의 상인 ‘브누아 드 라 당스’를 받은 발레 스타들이 짝을 이뤄 무대에 오른다는 소식에 3분도 안 돼 표가 매진됐다. 둘이 한 무대에 서는 건 2010년 유니버설발레단의 ‘라 바야데르’(마리우스 프티파 안무)에서 같은 역을 맡은 후 14년 만이다.
이날 인터뷰에서 소감을 묻는 질문에 박세은은 “‘우주 대스타’와 공연해서 큰 영광이다. 파리발레단 동료들에서 ‘나 기민 킴이랑 공연하러 간다’고 자랑하고 왔다”며, 김기민은 “누나랑 함께하니 정말 기쁘다. 누나 춤에 방해가 안 되도록 뒤에서 잘 받치려 한다”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예원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선후배 사이인 둘은 어려서부터 친했다. 박세은이 김기민의 형 김기완(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과 예원학교 친구였기 때문이다. 김기민은 “당시 저는 초등학생이었는데, 누나(박세은)를 보면 같이 춤추자고 쫄쫄 따라다녔다”며 “누나가 유독 외국인을 안 뽑는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활동하고 에투알까지 돼 (한국 후배 무용수들에게도 열리는) 길을 뚫어주니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박세은도 “정말 애기 같았던 친구가 어느 순간 어른이 돼 같이 춤을 추게 됐다”며 “오랜 만에 같이 춤을 춰 설렌다”고 화답했다.
프랑스어로 인도의 무희를 뜻하는 ‘라 바야데르’는 인도 힌두 사원을 배경으로 무희 니키아와 용맹한 전사 솔로르, 왕국의 공주 감자티, 최고 승려 브라만이 얽힌 3막짜리 대작 발레다.
‘라 바야데르’를 100번 가까이 공연하고 이 작품으로 2016년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남성무용수’ 상까지 받은 김기민은 “‘라 바야데르’는 자주 공연되지는 않지만 발레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발레를 좋아하도록 만들 수 있는 재밌고 쉬운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이번이 네 번째 ‘라 바야데르’라고 한 박세은은 “기민이는 정말 ‘라 바야데르’의 모든 버전을 다 해석한 것 같다. 시험 정답지를 아는 무용수와 춤을 추는 기분이라 도움받으며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한국의 발레 꿈나무들에겐 대표적으로 닮고 싶은 모델이다. 2011년 나란히 세계 무대에 도전한 뒤 탄탄한 실력과 피나는 노력에 스타성까지 갖춰 세계적 발레단의 간판 무용수가 됐다. 각각 순혈주의가 강한 파리오페라발레단과 마린스키발레단의 유일한 동양인 수석무용수와 최초 동양인 수석무용수다.
제2의 김기민과 박세은을 꿈꾸는 후배 무용수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지 물었다. “예술의 길은 본인이 답을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후배들이 힘들어할 때 얘기 들어주면서 토닥거리고 격려해주는 게 선배 역할 같아요.”(박세은)
“꿈을 하나만 가지면 단조로운 예술가가 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후배들이 단순히 ‘최고 무용수가 되겠다’는 것보다 다양한 꿈과 방향성을 갖고 (자신 있게) 나갔으면 좋겠어요. 어른과 선배들이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합니다.”(김기민)
이들과 함께 국립발레단 조연재와 안수연이 니키아 역을, 허서명과 하지석이 솔로르 역을 번갈아 연기한다. 감자티 역은 심현희·조연재·안수연이 맡는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