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한 어느 여름날, 용준(홍경)은 수영장에 도시락을 배달하러 갔다 여름(노윤서)을 처음 마주친다. 순간 주위 세상이 모두 사라진 것만 같다. 동생 가을(김민주)의 수영 훈련을 도와주는 여름의 웃음, 손짓, 몸짓이 반짝인다. 용준의 첫사랑이 시작된 순간이다.
내달 6일 개봉하는 영화 ‘청설’(사진)은 20대 중반 청춘의 설레는 첫사랑을 다뤘다. 예쁘고 착한 정서가 지배하며, 자극적인 양념 없이 상큼하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 영화는 2010년 개봉한 동명 대만영화를 리메이크했다. 원작은 ‘말할 수 없는 비밀’과 함께 국내에서 대만 로맨스 장르가 본격적으로 사랑받는 데 물꼬를 튼 작품이다.
극 중 여름과 가을 자매는 청각장애인이다. 다행히 수어를 알고 있던 용준은 이들과 무리 없이 소통한다. 수어를 통한 소통은 이 영화의 주요 특징이다. 말없이 손짓과 표정으로 대화하다 보니, 소리의 빈 공간은 음악이 메운다. 말이 거의 사라진 세상은 그만큼 평화롭다. 다만 말 없는 장면들이 쌓여갈수록, 음성이 그 자체로 일상에서 꽤 큰 자극이었음이 새삼 느껴진다.
이 영화를 연출한 조선호 감독은 28일 시사회 후 기자회견에서 “촬영을 시작해보니 소리가 없는 만큼 사람의 표정·눈을 집중해서 바라보게 됐고, 거기에서 진정성이 잘 드러나더라”라며 “다만 후반작업하며 음성의 빈 곳을 뭐로 채울지 신경 썼고, 어떻게 해야 우리 감성이 잘 전달될까 해서 사운드에 공을 많이 들였다”고 말했다.
배우 홍경은 “수어를 하면 상대가 어떤 말을 하려는지, 어떤 마음인지 봐야 해서 서로 눈을 뗄 수 없었다”며 “누군가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헤아리려는 게 어떤 건지 미약하게나마 알 수 있던 경험”이라고 돌아봤다.
영화에는 청각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일부 나오지만, 전체적으로 모든 인물이 서로에게 상냥하다. 세 주연 배우가 극 중 인물처럼 20대여서 풋풋하고 청량한 모습도 사랑스럽다.
조 감독은 “대만 원작의 사랑스럽고 순수한 감성을 최대한 가져오려 했다”며 “동시에 원작보다 각 인물의 정서, 인물들 간 관계에서 오는 고민과 생각을 담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홍경은 “(원작과 비교해) 저희의 장점은 훨씬 섬세하고 인물들이 서로 영향 받고 성장하는 게 더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게 빨리 휘발되고 빠른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는 게 필요하다고 피부로 느끼던 시기에 이 작품을 만났다”며 “원작을 볼 때 느낀 순수함이 잘 담겨 있다”고 장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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