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에 입체감 주는 ‘창틀’ 가장 인상적
남남동 방향 격자형, 한낮에 그늘 만들고
남서서쪽 수직 창살, 지는 햇살 유입 차단
분석실서 처리 농산물 신선도 유지 조치
현관, 둥근 프레임 돌출되고 캐노피 설치
‘불로문’ 닮은 형상… 국민 건강 기원한 듯
지금 우리는 ‘스마트’ 홍수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전화기에 첨단 기술을 더한 스마트폰이 삶에 필수 요소가 되면서 텔레비전을 스마트TV로, 전봇대를 스마트 폴로, 도시를 스마트시티로 바꾸기 시작했다. 당연히 인간의 생활이 이루어지는 건물도 스마트화를 피할 수 없다.
건축물에 첨단 기술을 더한다는 개념이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토부는 건축계획 및 환경, 기계·전기설비, 정보통신, 시스템통합, 시설경영관리 부문을 심사해 용적률, 조경 면적, 건축물 높이 제한을 완화해 주는 ‘지능형건축물(Intelligent Building) 인증제’를 2006년부터 실시해 왔다. 여기에 더해 국토부는 작년에 ‘스마트+빌딩 얼라이언스’를 출범하면서 “도심항공교통(UAM), 로봇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공간, 구조, 설비 등을 갖춘 건축물”을 ‘스마트+빌딩’으로 정의했다.
그런데 첨단 기술을 통해 최신 기능을 모아 놨다고 해서 지능형건축물 또는 스마트빌딩이 될까라는 의문도 든다. 결국 건축물을 이용하는 주체는 사람인데 사람이 느끼는 쾌적함, 적정함은 단순히 수치만으로 판단할 수 없고, 또한 건축 설계는 주어진 여러 조건을 단순히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최적의 해법과 함께 아름다움(aesthetics)을 찾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계·전기, 정보통신, 시스템통합이 없던 시대에도 건축가들은 주어진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는 해결안을 찾아왔다. 대전 원도심에 있는 옛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현 대전창작센터)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옛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복구 사업을 한창 진행했던 물자는 부족하고 기술은 전무했던 1958년에 지어졌다. 위치는 대전 원도심의 중심축인 대전역과 옛 충남도청사를 잇는 중앙로에서 남쪽으로 한 블록 떨어져 있다.
준공 당시 건물은 ‘농산물검사소 대전지소’였다. 농산물검사소는 1949년 8월 제정·시행된 ‘농산물검사법’에 따라 설립된 조직으로 전국에 6개 지소(서울, 대전, 전주, 광주, 대구, 부산)가 있었다. 이후 1962년에 ‘국립농산물검사소’로 이름이 바뀌었고 1998년 농업통계사무소와 통합된 다음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됐다. 이 건물의 이름도 1999년 7월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5개월 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이 선화동 옛 검찰청사로 옮기면서 빈 건물이 되었고 이듬해에는 소유권이 국가보훈처로 이전됨에 따라 ‘대전지방보훈청 별관’이라는 이름을 달게 됐다. 물론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건물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창틀이다. 창틀은 건물에 입체감을 부여한다. 동시에 수평 수직의 정연함이 체계적이고 기계적인 느낌을 준다. 그런데 창틀은 미적인 목적보다는 농산물의 품질관리와 안전성 조사라는 건물 본연의 기능을 충족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옛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에는 두 가지 형태의 창틀(louver)이 설치돼 있는데 하나는 벽에서 돌출된 격자형이고 다른 하나는 수직으로 긴 창살이다. 각각은 창이 향한 방향과 관련돼 있는데, 남남동 방향의 격자형 창틀은 한낮에 그늘을 만들고 남서서 방향의 수직 창살은 지는 해의 직사광선이 실내로 바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 심지어 수직 창살은 건물 안에서 방향을 조절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작동하지 않는다. 그늘을 만들고 볕을 가린 이유는 1층에 있었던 분석전처리실과 분석기기실에서 농산물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온습도를 조절하는 제대로 된 공조설비가 없는 상태에서 햇빛에 의해 실내 환경이 변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가 그나마 농산물의 변질을 막는 방법이었다.
이외에도 2층 서쪽에 배치된 사무실 앞 테라스에 설치된 퍼걸러는 차양과 함께 휴게공간을 제공해 준다. 현재 퍼걸러는 철거된 상태다. 속성분석실은 외부 환경에 가급적 영향을 받지 않도록 2층 가장 안쪽에 배치됐다. 구조적으로는 건물 내부의 기둥을 없애기 위해 철근콘크리트 슬래브와 간격이 좁은 보가 놓였다. 이를 통해 분석기기를 교체하거나 내부 공간을 활용할 때 제약이 없도록 했다. 건축가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내부에 기둥이 없어서 2008년부터는 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의 전시시설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전시 벽을 만들기 위해 창을 가려서 바깥 풍경을 바라볼 수 없게 된 점은 아쉽다.
옛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의 설계자는 건축가 배한구(1917∼2005)다. 그는 조정환과 함께 대전 지역의 1세대 건축을 이끈 인물로 평가된다. 진주시에서 태어난 배한구는 1936년 경성공립직업학교를 졸업한 뒤 조선화력발전소와 일만공무소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대전으로 온 시기는 20대 초반이었던 1939년으로 대전 제1호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했다. 배한구의 대표작은 대전YMCA회관, 대전중학교 옛 본관, 부여군 농협사옥 등이다.
창틀뿐만 아니라 ‘ㄱ’자 형태의 평면, 내부 배치 등을 봤을 때 옛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은 수평 수직의 질서로 꽉 짜인 건물이다. 그래서 전체적인 질서에서 벗어난 현관 출입구와 지붕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현관에는 모서리가 둥글게 처리된 프레임이 돌출돼 있는데 건물 외벽과 달리 검은색 돌이 쓰였다. 현관 위에 캐노피가 설치돼 있는 것으로 봐서 프레임은 기능보다는 상징적인 목적을 의도한 것 같다. 제작도 시공사인 일성건설이 아니라 석재가공기업인 한국광업이 별도로 맡았다. 형태로 추측해 보면 과거 왕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했던 불로문(不老門)을 닮았다. 건물의 역할과 함께 생각해 보면 이곳에서 조사하고 검사한 농산물을 먹은 국민이 건강하고 무탈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자 했던 것 같다.
건물의 인상을 결정하는 데 지붕이 큰 역할을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평성을 강조하는 평지붕이 더 어울려 보인다. 하지만 암수로 나뉘지 않은 시멘트기와가 사용되었다. ‘굿모닝 충청’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원래 계획은 평지붕이었으나 당시 평지붕으로 시공된 한일은행 대전지점과 안산부인과 의원 건물에서 누수가 일어나는 상황을 보고 설계를 변경했다고 한다(우리고장 대전이야기, 2017년 6월2일자).
이제 대전을 ‘노잼’(재미가 전혀 없음) 도시로 부르는 사람은 없다. 이러한 변화는 대전에 들어선 많은 미술관이나 박물관, 연구소가 만들지 않았다. 그 주역은 원도심에 있는 근대건축물과 골목 탐방이다. 그중 이 건물은 마주하고 있는 대흥동성당(1962)과 함께 일제가 아닌 해방 후 우리나라 건축가들이 고민했던 당시의 상황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최적의 해결안을 보여주고 있다.
방승환 도시건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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