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025시즌으로 출범 21년차를 맞는 프로배구에서 신인이 데뷔하자마자 주전을 차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또래 학생 선수들과 뛰는 아마추어리그와 외국인 선수도 함께 뛰는 프로리그 간에는 현저한 수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운도 필요하다. 아무리 특별한 재능과 기량을 지녔다고 해도 데뷔 팀의 동 포지션에 더 뛰어난 선배가 있으면 코트보다는 웜업존을 지키는 시간이 길어진다. 특히 고교 졸업 전에 프로에 합류해야 하는 여자 프로배구에선 순수 신인이 주전으로 자리 잡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9월 V리그 여자부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도로공사의 지명을 받은 세터 김다은(18)은 자신의 재능과 현 시점 보유한 기량이 프로 무대에서 어느 정도 먹히는 것과 동시에 운까지 모두 받쳐주는 모양새다. 지명 당시 김종민 감독은 “주전 경쟁도 가능한 선수다. 다만 시간이 좀 필요할 것”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시즌 초반부터 김다은을 주전으로 낙점해 밀어주는 분위기다. 팀 공격을 진두지휘하고 조율해야 하는 세터가 날개 공격수나 미들 블로커에 비해 경험치가 훨씬 더 많이 필요한 포지션이기에 김다은의 주전행은 이례적인 일이다.
김 감독의 당초 구상은 주전 세터는 4년차인 이윤정이 주전을 맡고, 세터 치고는 큰 키(178cm)인 김다은이 백업을 맡아 높이 보강이 필요할 때 코트를 밟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윤정의 경기운영은 안정적이지 못했다. 시즌 첫 경기인 페퍼저축은행전 0-3 완패에 이어 두 번째 경기 IBK기업은행전에서도 1-3으로 패하자 팀 운영 밑그림을 바꿨다. 김다은을 시즌 세 번째 경기인 지난달 31일 현대건설전부터 주전 세터로 발탁해 줄곧 코트를 지키게 하고 있다.
김다은으로 주전을 바꾸고도 도로공사의 시즌 첫 승은 이뤄지지 못했다. ‘디펜딩 챔피언’ 현대건설을 상대로는 풀 세트 접전까지 끌고갔지만, 2-3으로 패했고, 지난 3일 정관장전에선 0-3으로 완패했다. 비록 경기는 패했지만, 김다은은 전체 1순위다운 재능을 뽐냈다. 발은 다소 느리지만, 좋은 신체 조건에서 나오는 힘있는 토스워크는 기존 주전과 백업을 맡고 있었던 이윤정과 하효림보다 뛰어났다. 이윤정과 하효림이 172cm의 단신 세터다 보니 전위로 올라오면 상대 공격수들의 타겟이 된 것과는 달리 김다은은 신장도 좋아서 상대 공격수들이 무작정 달겨들기엔 부담스러운 블로킹 높이를 자랑했다.
적장들도 김다은의 잠재력에 대해선 모두 입을 모아 칭찬하고 있다. 현대건설 강성형 감독은 “김다은의 토스를 보니 왜 전체 1순위인지 알겠다”고 말했고, 정관장 고희진 감독도 “B 속공을 밀어주는 것을 보니 대성할 수 있는 선수다. 팬들이 주목해야 하는 선수”라고 놀라워했다.
도로공사는 올 시즌을 앞두고 자유계약선수(FA) 시장 ‘최대어’로 꼽힌 공수겸장 아웃사이드 히터 강소휘(27)를 영입했다. 내심 2년 만에 챔피언결정전 우승 트로피를 탈환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시즌을 출발했지만, 현실은 개막 4연패다. 더 이상 패배가 쌓이면 일찌감치 봄배구 레이스에서 탈락할 위험도 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김종민 감독은 “김다은을 계속 선발로 쓰겠다”라는 의지를 천명했다. 신인에게 경험치를 먹여가면서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겠다는 것이다. 분명 도로공사의 경기력은 김다은을 선발로 쓰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도로공사는 7일 김천 홈에서 4연승의 무패행진을 달리고 있는 흥국생명을 만난다. 현 시점 최강팀을 상대로 시즌 첫 승을 거둘 수 있을까. 전체 1순위 신인 김다은의 잠재력을 가늠해볼 또 한 번의 시험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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