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곳에 빛이 들 때, 모든 곳에 빛이 비친다.’ 정신장애인, 정신질환자는 가장 낮은 곳에 있습니다. 차별과 혐오 속에 세상으로 나오지 못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건 자신을 부정하거나 숨기지 않고 살아가게끔 해달라는 것입니다.”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부민주 센터장)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와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 더불어민주당 남인순·서미화 의원은 5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신질환자·장애인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해 정신건강복지법을 시급히 전면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이 마련한 개정안에는 보호의무자 제도 폐지, 입·퇴원 제도 개선, 정신응급지원체계 구성, 동료지원센터 설치 등의 내용이 담겼다.
보호의무자 제도는 정신질환자 입원 시에 보호의무자의 동의를 받도록 한 제도다. 동료지원센터란 정신장애인들이 소속돼 동료 상담과 지원을 수행하며 보건·의료, 일상생활 등 영역에서 당사자 권익을 보호하는 기관이다.
반희성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센터장은 이날 회견에서 “우리나라의 정신질환·장애 당사자 평균 입원 기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상위권으로 200일가량 되는 데 비해 지역사회서비스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특히 자립생활과 회복을 지원하는 기관은 거의 없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완치는 아니더라도 당사자로서 무탈하게 살 수 있는 상태가 회복의 상태이며, 동료지원에 기반을 둔 서비스가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 센터장은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보호의무자 제도 및 입원제도 개선 부분”이라며 “현재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책임을 국가가 아닌 가족 등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신장애인 동의 입원은 취지와 달리 강제입원 절차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고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도 가족 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보호의무자 제도를 폐지하고, 입원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거 불안정 문제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반 센터장은 “장기입원 당사자들은 퇴원 후 살 곳이 없기 때문에 병원에 남아 있는 경우도 상당수 존재한다”면서 “이번 개정안에는 정신 재활시설 설치, 주거, 고용, 교육 등 생활 부분에서의 서비스, 당사자의 가족을 위한 가족지원 등 소중한 조항들이 신설된 것으로 알고 있다. 부디 22대 국회에서 이러한 개정안이 무사히 통과돼 어렵고 힘든 당사자와 그 가족들의 삶의 한 줄기 빛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신석철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상임대표도 “정신건강복지법 기본이념을 보면 정신질환자는 자신과 관련된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는 조항이 있다”며 “오늘 당사자 단체 등이 준비한 개정안이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회견을 공동주최한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번 기자회견은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을 위해 진행됐다”며 “정신장애인이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개정이 필요함을 느낀다”고 적었다. 김 의원은 “개정안과 함께 1201명의 당사자가 직접 서명한 서명록도 전달받았다”면서 “당사자 및 관계자분들의 소중한 의견을 마음속 깊이 새기며 저 또한 정신장애인의 권리보장을 위해 입법적·정책적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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