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상 성차별 시정제도 실효성은 미미해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은 근로자 성별을 이유로 채용 또는 근로 조건을 다르게 할 경우 이를 차별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직무 성격에 비춰 특정 성(性)이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경우를 제외토록 했다.
A씨가 몸담은 회사의 경우 특정 성이 직무에 불가피하게 요구된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면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한 셈이 된다. 회사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근로자가 이 같은 차별 내용을 인지했거나 피해를 봤다면 고용상 성차별 시정제도를 이용하면 된다. 이 제도는 모집·채용·승진·해고 등과 관련해 성차별을 당한 노동자가 노동위원회에 신고해 구제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다만 제도의 실효성은 아직 미미하다.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고용상 성차별 시정제도가 시행된 2022년 5월 19일부터 올해 3월까지 노동위원회에 접수된 차별시정 신청 91건 중 시정명령이 내려진 건 불과 21건(23.1%)에 그친다.
A씨의 회사처럼 남녀 합격자 비율을 사전에 정해놓는 일이 과거 금융권에서는 비일비재했다. 금융권의 성차별적 채용 관행은 2018년 금융감독원 조사로 대거 드러났는데 당시 법인뿐 아니라 최고경영자(CEO)들까지 재판에 넘겨졌다.
2022년까지 이어진 재판에서 대법원은 법인과 인사 담당자들에 대해 유죄를 확정했다. 당시 하나은행은 2013~2016년 신입 행원 채용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남녀 채용비율을 A씨 회사와 같이 4:1로 설정했다. 최초 지원자 남녀 비율은 1.3:1로 거의 비슷했지만, 전형이 진행될수록 성비 차이가 벌어졌고, 여성 지원자만 서류 전형 합격선이 크게 높아졌다. 재판부는 “일반 행원 기준에서 남성이 더 필요하다고 볼 합리적 이유가 없는데도 인위적으로 성비를 정한 것은 전통적 고정관념에 의한 명백한 차별”이라며 하나은행 법인에 유죄 판결을 내렸다.
해당 판례에 대해 신수정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연구소 연구원은 “금융권의 채용 성차별 관행이 명백하게 드러났지만, 여전히 변화가 느껴지지는 않는다”며 ”남녀고용평등법상 채용 성차별 금지조항의 처벌 규정이 벌금 500만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신 연구원은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며 “모집·채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성차별은 노동의 기회와 생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권리의 침해 정도와 피해가 크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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