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그제 지난해 9월부터 올해 10월까지 19세 미만 청소년 사이버 도박 사범 4715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간 붙잡힌 전체 도박 사범 9971명의 절반 가까운 47.2%가 청소년인 셈이다. 그중에는 심지어 9살 어린이를 포함해 초등학생도 46명이나 있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개탄을 금하기 어렵다. 경찰이 특별 단속을 내년 10월까지 1년 연장한다고 했으나 그 정도 대응으론 부족하다. 교육부 및 시·도 교육청과 공조해 특단의 대책을 내놓길 촉구한다.
수사 결과를 보면 충격적인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검거된 16세 남학생은 바카라 도박에 무려 2억원 가까운 판돈을 쏟아부었다. 경찰에 따르면 이 학생은 평소 부모에게서 받은 용돈 등을 아껴 종잣돈을 만든 뒤 이를 잘 굴려서 거액을 모았다고 한다. 본인이 직접 도박 사이트를 만들어 운영한 이도 16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판돈 입출금을 위해 버젓이 대포 통장을 개설해 관리하거나 온라인 공간에서 도박 사이트를 광고한 청소년들도 적발됐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장차 대한민국을 이끌어야 할 동량들이 도박판이나 기웃거려서야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청소년들의 도박이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고정 수입이 없는 그들이 판돈 마련을 위해서 다른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부모나 친구 등 지인의 지갑에 손을 대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경찰 관계자도 “용돈을 아껴 도박 자금을 만든다는 건 극히 예외적 사례일 뿐”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요즘 사이버 공간에서는 누구나 손쉽게 사채 광고를 접할 수 있다. 아직 분별력이 떨어지고 경제에 대한 관념도 부족한 청소년들이 판돈 때문에 사채까지 끌어 쓰는 경우 자칫 가족 전체가 풍비박산이 나게 된다. 경찰과 교육 당국이 나서 청소년 사이버 도박 실태를 파악하고 근절책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한 이유다.
온라인 도박에 빠져든 동기를 물어보면 청소년들은 “그냥 게임인 줄 알고 즐겼다”는 답을 내놓기 일쑤라고 한다. 도박과 게임은 다르다는 점, 도박은 곧 범죄라는 점을 가정은 물론 학교에서도 어린이·청소년들에게 확실히 가르쳐야 한다. 의학적으로 도박 중독은 정신질환의 일종인 ‘습관 및 충동 장애’에 해당한다. 도박에 빠진 청소년들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제대로 된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보건 당국도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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