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도서관을 선호한다. 서가에 꽂힌 책은 적지만 광장처럼 넓은 도서관이 주지 못하는 마음의 편안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도서관에서 ‘죽음’이라는 주제로 도서를 검색하다 이 작은 도서관에 이렇게 많은 죽음 관련 책들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한국인들의 관심사가 잘 사는 것을 넘어 잘 죽는 것(웰 다잉)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확실히 삶과 죽음은 만리장성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다. 누구도 삶의 최종 국면인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면 죽음을 응시하기를 거부하다가 당황스럽게 죽음과 마주치느니 차라리 죽음을 응시하고 준비하는 것이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는 길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닌가 보다.
세계영화사의 거장 장뤼크 고다르는 2022년 스위스에서 향년 91세로 사망했다. 그의 선택은 조력 자살이었다. 조력사가 금지된 프랑스를 떠나 스위스에서 생을 마감하면서 그는 자신의 죽음이 공론화되기를 원했고 프랑스 대통령실은 고다르가 사망한 날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권리’에 대한 토론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존엄사와 조력사는 다른 개념이다. 한국을 비롯한 모든 사회는 조력사에 대해 훨씬 엄격한 태도를 취한다. 누구나 존엄사를 원하지만 모두가 조력사를 찬성하지는 않는다. 조력사는 전통적인 윤리와 종교 문제뿐 아니라 잠재적 범죄의 가능성과 법의 문제도 개입한다는 점에서 훨씬 더 복잡하고 거부감도 크다. 일본 영화 ‘플랜 75’는 국가 주도의 조력 자살법이 사회의 약자들에게 집중되며 자발적 선택이라는 형식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이들에게 강요된 타살이라 경고한다.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많은 거장 감독들이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개인의 권리’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프랑스 감독 프랑수아 오종은 2022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스스로 대소변을 가릴 수 없는 아버지와 그의 조력사를 돕게 된 딸의 고뇌와 도덕적 딜레마에 관한 영화 ‘다 잘된 거야’를 만들었다. 스페인의 거장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항암 치료에 실패하고 온몸에 암세포가 전이된 종군 기자 마사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여정을 다룬 ‘룸 넥스트 도어’로 2023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마사는 “암이 나를 죽이기 전에 내가 나를 죽이겠다”는 말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오랜 친구 잉그리드에게 자신을 배웅해 달라고 요청한다. 합법과 불법의 아슬한 경계에서 죽음을 준비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충돌하기도 하고 불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두 상반된 캐릭터는 한 방향을 바라본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슬픔과 따뜻함, 우아함과 창백함, 단호함과 주저함을 오간다. 영화는 매우 논쟁적으로 우리에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품위 있는 하나의 방법을 보여준다. 영화 제목인 ‘룸 넥스트 도어’는 친구의 죽음을 배웅하는 잉그리드가 머무는 공간이다. 그것은 예의를 갖춰 타인의 죽음을 배웅하는 최대한 가까운 거리를 상징하는 장소이다.
맹수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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