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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배에 투계 빼앗긴 소년
불지르려 폭력배 집 찾아가
부족한 어른들로 인해 겪는
성장의 가혹한 아픔들 그려

메도루마 슌 ‘투계’(‘혼 불어넣기’에 수록, 유은경 옮김, 아시아)

나는 오키나와라는 지명을 들으면 작가 메도루마 슌이 먼저 떠오른다. 한곳에 오래 사는 작가에게 거주지, 장소애(場所愛)의 의미가 소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이기도 하고 특히 거의 십오 년 전에 처음 읽은 뒤로 성장소설을 떠올릴 때마다 다시 들춰보게 되는 단편 ‘투계’의 공간 역시 오키나와라 그럴 것이다. 성장의 가혹한 아픔을 겪는 소년 다카시의 생생한 감정과 마지막 행동 때문에라도 잊을 수 없는 단편이다. 그리고 그러한, 부족한 어른들로 인해서 하지 않아도 되는 통과의례를 겪을 수밖에 없는 많은 소년에 관한 생각을 저버리기 어려워서도.

조경란 소설가

다카시는 초등학생이고 지금은 여름이다. 아버지 요시아키는 낚시, 분재 등 취미가 다양한데 그중에서도 투계에 빠져 있다. 직접 부화시킨 병아리를 키워 도박판에서 푼돈을 벌기도 하고 오키나와산 투계를 지칭하는 ‘다우치’ 사육법에 관해선 누구보다 박식해 인근에서 사람들이 배우러 찾아올 정도이다. 투계로 도박판을 벌이는 건 오키나와에서도 불법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다우치를 일회용품으로 취급하지 않고 단순히 돈을 버는 것도 목적이 아니며 “강한 닭을 제 손으로 키우고 소유하는 게 다우치 사육자의 긍지”로 알고 있다.

다카시가 5학년이 되자 아버지는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병아리 한 마리를 키우라고 주며 말했다. 네가 책임져야 한다. 처음 가져본 자신만의 병아리에게 다카시는 ‘아카(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러자 다른 닭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된 듯 느껴졌고 하굣길에 애벌레나 메뚜기를 잡아 오는 게 일과가 될 정도로 먹이도 신경 써서 주었다. 책임져야 할 것이 생기고 무언가를 기르기 시작하자 다카시는 자신이 어른스러워진 느낌도 받았다. 아카는 이름에 어울리도록 붉은 날개를 가졌고 그 날개를 펴면 커다란 꽃이 핀 듯 붉은 댓잎 깃털이 빛나 보였다.

영계가 투계로 자라기 시작하면 아버지는 거울을 이용해 다우치들을 훈련 시키곤 했다. 아카를 처음 거울 앞에 세웠을 때 다카시는 아버지 앞에서 자신이 시험을 치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 아카에게 훈련을 시켜보고 나서 아버지는 웃었다. 다카시에게는 그 웃음이 이렇게 느껴졌다. 네 다우치는 엄청 강한 닭이구나. 아버지는 아카를 도박판에 데리고 갔다. 다카시는 못마땅했지만 닭장에서 사육되기만 하다 죽는 다우치는 비참할 터이므로 아버지를 말리기도 어려웠다. 어느덧 투계꾼들 사이에서 아카는 유명한 싸움닭이 되었다.

사토하라, 그가 집으로 찾아왔다. 오키나와 반환 전에 미군 기지 앞의 술집 거리를 거점으로 일대를 장악하던 조직 폭력단의 간부가. 그가 아버지와 다카시에게 말했다. “얘야, 이 다우치 나에게 안 팔래?” 다카시는 기억했다. 일 년 전 그가 아버지에게 찾아와 아끼던 분재 하나를 팔라고 했을 때 아버지는 거절했고, 그날 밤에 강도가 들어와 그걸 훔쳐 갔다는 사실을. 겁을 먹었어도 다카시는 말했다. 팔지 않는다고, 이건 내 거라고. 사토하라가 돌아간 후 아버지는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저것을 사겠다고 할 때가 좋은 거라고. 이제 이 부자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짐작이 될 것이고 그 일이 일어난다. 힘없는 아버지와 아들은 그 일을 견뎌내려고 했다.

하지만 어떤 일만은 그렇게 할 수 없고, 가만히 죽은 듯이 있을 수가 없기도 하다. 사토하라는 빼앗다시피 가져간 아카에게 오키나와 투계꾼이라면 저지를 수 없는 끔찍한 시합을 시켰고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게 두려운 사람들은 침묵했다. 다우치로 키워진 아카는 도망갈 줄 모르는 닭이었다. 아카를 묻고 돌아와 다카시는 비닐봉지, 성냥 등 필요한 것들을 챙겨 자전거를 타고 사토하라의 벽이 높은 집을 향해 달린다. 내 소유였던 것, 책임지고 길렀던 것을 빼앗긴 소년은.

그리고 소년은 행동한다. 아픔이 너무 커서 그 일이 올바른지 그렇지 않은지 판단할 틈도 없이. 지금 가진 뜨거움은 이 한 가지다. 도망가지 않겠다는 마음. 어떤 용기와 필연적인 행동은 비단 성장소설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리라.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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