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러시아가 ‘혈맹‘으로 진화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딜레마’가 주목을 받고 있다. 대북 통제력이 약해지고 북·러 밀착의 파장이 동아시아 안보지형까지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불편하지만, 공개적으로 반대하거나 비판하지도 어려운 상황이란 것이다.
16일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지역전략연구실 연구위원은 ‘북한군 러시아 파병을 보는 중국의 셈법과 예상 행보’ 이슈브리프에서 “중국 정부는 북한의 동맹국으로서 특수관계를 유지하며, 영향력을 관리해 왔으나 정작 북한의 러시아 파병에 관해서는 복잡한 ‘침묵’을 유지, ‘당황’과 ‘무력감’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중국 최고지도부 역시 북한군 파병에 관해 ‘복잡하고 불편한 심기’를 억지로 감추면서 일단 상황의 변화를 관측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달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제16차 BRICS 정상회의에서의 발언을 강조했다. 당시 시 주석은 “전쟁터가 밖으로 번지지 않고, 전쟁이 격화되지 않으며, 모든 당사자가 불에 기름을 붓지 않는다는 3원칙을 견지해 상황을 조속히 완화시켜야 한다”고 했다. 박 연구위원은 “북한과 러시아가 들으라는 듯”한 언급으로 평가했다.
박 연구위원은 “중국 지도부에게 있어서 북한군 파병은 유럽에서 일어난 안보 문제를 동아시아로 끌어들일 수 있는 촉매제가 되고,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의 동아시아 확대를 자극할 수 있으며, 미국 대선 이후 우방 확보를 통해 ‘블록화’를 모색해 온 중국에 또 다른 숙제를 안겨주게 된다는 점에서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고 했다.
그는 아직 중국이 입장이 드러나지 않은 상황으로, 대러관계 상 상반된 시나리오 가능성이 모두 있다고 봤다.
그는 “중국은 미국의 견제와 압박에 대응하고, 미국 중심 서구 주도 국제질서의 변화를 추동하기 위한 ‘반미 연합전선’ 구축을 위해 러시아와 준 동맹국 수준의 연대를 지속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며 “중국은 대러시아 무기 지원은 자제하면서 러시아로부터 에너지와 식량 등을 저가에 구매하고, 서방이 철수한 러시아 시장을 장악해 경제이익을 챙기면서 러시아의 영향권인 중앙아시아에 적극 진출하는 ‘실용 외교’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은 러시아가 서방과 정면 대립하는 한 중국에 대한 의존도는 더 커질 것이란 셈법 아래 미국 및 유럽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러시아의 대중국 의존도 심화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러시아와 전략적 협력관계를 지속하고자 할 것”이라고 봤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 재등장과 북한군 파병에 따른 우크라이나 전장 상황 그리고 북한에 대한 영향력 상실 우려 등 국제질서 변화에 따라 러시아에 목소리를 낼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했다. “중국은 미국과 보이지 않는 협조를 통해 북한군 파병문제를 중·미관계 관리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무엇보다 중국은 러시아와 북한이 ‘준(準)동맹’ 성격의 조약까지 맺은 가운데 ‘한·미·일 대 중·러·북’ 대결 구도에 끌려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북한 제어’를 위한 물밑 중·러회담을 시도할 수도 있다”고 봤다. 이어 “중국은 러시아를 향해 ‘대화와 협상을 통한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계속 주장하면서 외부 도전에 대한 공동 대응을 위해서라도 러시아가 미국과 서방에 중대한 빌미를 제공하지 말 것을 권유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박 연구위원은 “중국은 북한군 파병과 러·북 밀착으로 러시아가 이미 핵을 고도화한 북한에 날개를 달아줄 각종 지원을 할 경우, 북한의 예측 불가한 행동으로 동북아 안보지형이 무너지고 미·중관계 역시 흔들리게 되는 상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러·북 밀착이 제어범위를 벗어난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대북 제재의 끈을 당기고, 탈북민 정책의 변화를 통해 북한에 메시지를 전달하며, ‘이이제이(以夷制夷)’에 따라 한·중관계 발전을 통해 북한을 견제하려 들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중·북 관계의 불편함을 최대한 수면 위로 드러내지 않고자 노력할 것이며, 필요시에는 ‘대북 특사’ 파견 또는 ‘김정은 방중’ 협의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봤다.
박 연구위원은 “전격적인 북한군 파병은 그동안 우리 정부가 행한 한·러관계, 러·북관계,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국제정세 평가와 판단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전반적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정부는 러·북밀착을 둘러싼 한·러관계에서 용인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 무엇이고, 이를 제어·관리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그리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책 옵션을 중심으로 냉정히 판별, 대응해야 한다”며 중국을 향해서는 “‘러시아라는 또 하나의 혈맹을 만들기 위해 달려가는 북한’을 방관하는 것은 중국의 책임대국 이미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중국의 ‘북한 감싸 안기’에 대한 변화를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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