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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국보 ‘반가사유상’·‘하니와’, 닮은꼴이 만나 이룬 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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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11-17 09:38:00 수정 : 2024-11-17 09:3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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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구가 다 모이는 건 필자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아마 없지 않을까.”

 

도쿄국립박물관 관계자가 개최 중인 ‘하니와’ 특별전에 드러낸 자부심이다. 그만큼 힘든 일을 성사시켰다는 뿌듯함이기도 하다. 일본 각지, 해외 박물관에 흩어져 있는 ‘하니와(埴輪) 비늘 갑옷을 입은 무인’(무인 하니와) 5구 모두를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았다. 형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빼닮은 5구는 전시회의 하이라이트다. 

 

‘하니와 비늘 갑옷을 입은 무인’ 완형 5점을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은 도쿄국립박물관 특별전 전시실 모습.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반가사유상 2구를 나란히 모신 ‘사유의 방’이 있다. 복식, 장신구가 다르지만 비슷한 크기, 자세는 하나의 신(神), 그 신이 마침내 도달한 동일한 순간을 묘사한 것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예술성만 놓고 보면 따라올 게 없다는 두 불상을 한 눈에 보는 건 사유의 방이 선사하는 특별한 경험이다. 

 

두 박물관에서 자국을 대표하는 국보가 닮은꼴과 만나 이룬 절경이 특별하다.

 

◆“사무라이 시조…형제처럼 닮았다”

 

약 1750년 전, ‘왜’라 불렸던 일본열도에 거대한 고분이 등장했다. 앞은 네모, 뒤는 둥글어 ‘전방후원분’이라 불린다. 대왕, 왕 등으로 불린 최고지배자의 권위를 보여주는 동시에 정치체제가 정비되기 시작한 당대를 상징하는 구조물이었다. 3세기 후반에서 7세기까지 약 350년간을 고분의 일본어 발음 그대로 ‘고훈시대’라 부른다.

 

도쿄국립박물관 특별전 ‘하니와’ 전시실.

하니와는 고분 주변에 세워두던 조형물이었다. 사람, 집, 동물, 무기, 배 등 형태가 다양하다. 성역화된 고분 주변을 지키며 부정한 기운을 물리치기를 바란 당대인의 바람이 깃든 것으로 해석된다. 한반도, 중국대륙에서 불교문화가 유입된 아스카 시대에 이르러 사라졌다고 한다.   

 

하니와로는 처음으로 국보로 지정된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하니와 비늘 갑옷을 입은 무인’. 

도쿄박물관 소장 무인 하니와는 하니와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1974년 하니와 중에서 처음으로 국보로 지정됐다. 지정 5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전시회를 열며 도쿄박물관이 마련한 특별한 이벤트가 완형으로 전해지는 무인 하니와 5구를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은 것이다. 도쿄박물관 외에 군마현 아이카와고고관, 지바현 국립역사민속박물관, 나라현 덴리대와 미국 시애틀미술관이 1구씩 소장하고 있다. 

 

일본 군마현에서 출토된 ‘하니와 비늘 갑옷을 입은 무인’ 5구. 

5구는 무척 닮았다. 목까지 감싼 투구, 나비 모양 매듭지은 갑옷, 큰칼, 왼손에 쥔 활 등이 같다. 사뭇 진지한 표정도 비슷하다. 도쿄박물관은 “전장에 나갔을 때가 아닌 의례에 참가한 모습으로 해석된다”며 “형제처럼 무척 닮았다. 같은 공방, 같은 공인이 제작했을 가능성이 지적될 정도”라고 밝혔다. 각 무인 하니와가 출토된 고분이 모두 군마현에 있으니 이런 추측을 해볼 만도 하다. 도쿄박물관 소장 무인 하니와를 “사무라이의 시조”라고 설명한 것이 흥미롭다. 

 

◆“세상 너머를 향한 신비한 두 미소”

 

무인 하니와 5구를 모은 도쿄박물관 전시실은 흥겨운 소란함으로 가득했다. 사진을 찍고, 같고 다른 점을 확인하려는 듯 각 무인 하니와 앞을 오가는 관람객들은 즐거워 보였다. 하니와가 가진 경쾌함, 발랄함에 반응한 것이 아닐까 싶다.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두 구를 한 자리에 모은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은 분위기가 완연히 다르다. 깨달음에 이른 순간을 포착한 두 미륵보살상의 부드럽고 온화한 카리스마는 보는 이를 경건하게 만든다. 사유의 방은 2021년 11월 439㎡ 크기로 설치됐다. 마주봤을 때 왼쪽이 보관, 장식, 복식 등이 상대적으로 화려하다. 오른쪽은 머리에 3면이 둥근 산 모양의 관(冠)을 쓰고 있고 상반신에 옷을 표현하지 않았다. 둘 다 국보로 지정돼 있고 정식명칭은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으로 같다. 구분을 위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2021년 삭제되기 전에는 지정번호에 따라 왼쪽을 78호, 오른쪽을 83호로 부르기도 했다. 

 

한 때 두 반가사유상을 한 눈에 보는 건 매우 예외적인 경험이었다. 사유의 방 설치 전 중앙박물관은 불상을 모은 전시실 한 켠에 따로 공간을 마련하고 1년 간격으로 번갈아 전시했다. 한시적으로나마 함께 전시된 것은 중앙박물관이 정부중앙청사로 이용되던 건물로 이전한 1986∼1988년, 지금의 용산으로 이전하기 직전인 2004년, ‘고대불교조각대전’이 열린 2015년 세 차례뿐이었다. 사유의 방 설치를 이끌었던 민병찬 당시 중앙박물관 관장은 “반가사유상을 한국 대표 브랜드로 공고히 하고 세계적 작품으로 거듭나게 하고 싶다”는 욕심과, “매우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사유를 통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면 좋겠다”는 바람을 동시에 전했었다. 

 

반가사유상 닮은꼴 전시는 한·일 양국 간에도 진행됐다. 2016년 5∼7월 중앙박물관, 도쿄박물관 순회전시에서 한국의 78호 반가사유상과 일본의 국보인 주구지(中宮寺) 소장 반가사유상이 마주했다. 도쿄박물관 전시 때는 아키히토 당시 일왕 부부가 찾아 감상할 정도로 화제가 됐다. 하지만 두 불상은 같은 반가사유상이라는 점 말고는 닮은 점이 별로 없다. 무엇보다 주구지 반가사유상(높이 167.6㎝)로 78호 반가사유상(82㎝)보다 2배는 커 마주 앉은 모습의 균형이 흐트러져 보는 맛이 덜했다.        

 

사실 이 전시회 기획 단계에서 출품을 계획했던 건 두 불상이 아니었다. 한국의 83호와 일본 고류지(廣隆寺) 반가사유상이 주인공이었다. 두 불상은 83호가 금동이고, 고류지 것이 목제라는 점을 빼면 쌍둥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하지만 고류지에서 반출을 허락하지 않아 본래의 구상이 실현되지는 못했다.  


도쿄=강구열 특파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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