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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지역 예술 영재, 재능의 꽃 활짝 피운다

입력 : 2024-11-18 20:42:23 수정 : 2024-11-18 23:5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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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예술영재원 지역캠퍼스 안착

임윤찬·한재민 등 배출한 서울 본원
타 지역 아이들 지원 어려운 점 문제

2021년 세종·통영, 2023년 광주 개관
권역별로 선발, 다양한 양질 교육 제공

학생·학부모 만족도 각각 88%·90%
안정적인 운영예산 확보 등은 과제로
# 경남예술고 1학년 박지훈(16)군은 타악기 전문 연주자를 꿈꾼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2020년 방과후 활동으로 관악부에 들어가 타악기를 배운 게 계기였다. 방과후 수업만으론 성이 안 차 학원까지 다니며 연습할 만큼 타악 연주에 재미를 붙였다. 박군의 재능과 열정을 눈여겨본 지도 교사는 마침 그해 시범운영에 들어간 한국예술영재교육원 경남통영캠퍼스를 제자에게 추천했다. 영재교육원 교육 환경이 매우 만족스러웠던 박군은 매주 토요일마다 거주지인 경남 진주에서 차로 왕복 3시간가량 걸리는 통영캠퍼스까지 오가며 기량을 연마했다. 매년 치러지는 선발 시험을 통과해 어느덧 5년 차인 그는 최근 통화에서 “평소 접하기 힘들었던 음악문법 등 음악 이론도 자세히 배우고 전공 실기도 잘 가르쳐줘서 실력이 많이 향상돼 영재원 교육이 아주 마음에 든다”면서 “대학에 갈 때까진 계속 다닐 생각”이라고 말했다.

# ‘판소리 영재’인 장재완(11·광주광역시 일신초 5학년)군은 어려서부터 트로트를 즐겼다. 8살 때 트로트 경연 TV프로그램을 보다 초등학생 참가자들이 판소리를 배웠다고 하자 부모에게 졸라 바로 판소리 학원에 다녔다. 트로트를 잘 부르는 가수가 되고 싶어서였는데 곧장 판소리의 매력에 빠졌다. 각 판소리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감정을 담아 노래하는 게 너무 재미있고, 북으로 장단 치는 것도 흥이 났다. 학원에서만 배우다 올해 한국예술영재교육원 광주캠퍼스에 입학하면서 몰라보게 실력이 늘었다. 장군은 “학원에서는 단체 레슨(수업)이었는데 영재교육원에서는 전문가 선생님에게 개인레슨을 받고 평일에도 얼마든지 와서 연습할 수 있도록 해준다”며 “유명한 소리꾼이 되고 국립창극단에도 들어가는 게 꿈”이라고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부설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의 지역 분원으로 2021년부터 순차적으로 정식 개관한 세종캠퍼스와 경남통영캠퍼스, 광주캠퍼스는 각각 충청권·경상권·전라권 예술영재들에게 양질의 영재교육을 제공하며 지역 예술영재 발굴과 육성에 힘쓰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세종캠퍼스(전통예술), 경남통영캠퍼스(발레), 광주캠퍼스(음악) 수업 장면. 한국예술영재교육원 제공

◆세종·통영·광주영재원, 지역 예술영재 육성

최초 국립 예술영재교육기관인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부설 한국예술영재교육원(예술영재원)의 지역캠퍼스(분원)가 지역 예술영재교육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예술영재원은 1993년 개교한 한예종이 운영하던 예술실기 과정 예비학교의 후신이다. 정부가 국가적 차원의 예술영재를 발굴, 육성하려고 2008년 ‘조기교육과 교육비 전액 국고 지원’을 운영 원칙으로 해 설립했다.

그동안 예비학교와 예술영재원은 한예종의 우수한 교수진과 교육 시설·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피아니스트 김선욱·손열음·박재홍·문지영·임윤찬, 첼리스트 최하영·한재민,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임지영, 발레리나 박세은, 발레리노 김기민 등 뛰어난 예술인을 숱하게 배출했다.

해마다 심사를 거쳐 음악(클래식)·무용(발레)·전통예술 분야 영재(초3∼고3)를 선발했고, 2021년 멀티·영상미디어 등 융합예술 분야가 신설됐다.

하지만 예술영재원이 서울에 있다 보니 먼 지역에 사는 데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가정의 아이들은 지원할 엄두도 못 내는 등 지역 예술영재 소외가 문제로 지적됐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영재교육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예술영재원 지역확대 사업에 나섰다. 세종·통영캠퍼스를 2021년, 광주캠퍼스를 2023년 정식 개관했다. 한예종이 강사 파견과 교육프로그램 등 교육 기반을,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행정·교육공간 등 시설 기반을 각각 제공하는 협력 체제로 운영된다. 전국 단위로 학생을 모집·선발하는 서울 본원과 달리 이들 캠퍼스는 권역별로 뽑는다. 세종캠퍼스는 충청권(세종·대전·충남·충북), 통영캠퍼스는 경상권(경남·경북·대구·부산·울산), 광주캠퍼스는 전라권(광주·전남·전북) 학생만 지원할 수 있다. 각 세부 전공에 따라 개인·그룹별 수업이 주로 주말에 이뤄지고, 향상음악회와 공연실습, 한예종 교수와 명연주자 등이 직접 지도하는 마스터 클래스(명인 강좌) 등 다양한 교육이 제공된다.

올해 선발인원은 서울 본원 203명과 세종(40명)·통영(30명)·광주(38명) 캠퍼스 합쳐 모두 311명이다.

◆지역 예술영재원 학생·학부모 만족도 높아

지역 예술영재원에 다닌 학생들이나 자녀를 보낸 부모들은 교육 환경과 수준에 대부분 만족하고 있다.

18일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지난 4∼5월 예술영재원 지역캠퍼스 학생 218명과 학부모 10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재원이 제공하는 예술영재교육에 만족한다’는 응답률이 학생과 학부모 각각 87.6%(매우 만족 57.8%, 만족 29.8%)와 90.1%(매우 만족 54.5%, 만족 35.6%)로 나타났다. ‘만족스럽지 않다’는 응답률은 각각 2.3%와 2.0%에 그쳤다. 학생들은 만족하는 첫 번째 이유로 한예종 출신이 주축인 강사진의 우수성(41.7%)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교육프로그램(26.7%)과 교육시설(9.4%), 수강료 무료(8.9%), 가까운 거리(5.2%) 등 순으로 답했다. 예술영재원의 수업, 교강사 등 항목별 만족도에서도 10명 중 8∼9명이 “전공 실기와 이론에 관해 깊이 있게 배운다”, “결과물을 만들고 발표하는 기회를 갖는다”, “자신감과 전공 실기 능력이 향상됐다”고 응답하는 등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통영캠퍼스에서 초창기부터 음악이론을 가르쳐 온 인채은 강사는 “아무래도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지역적 한계로 양질의 예술교육을 받기 어려웠는데 지역캠퍼스가 어느 정도 해소해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에 있는 학생들과의 실력 차이도 갈수록 줄고 있다”며 “(지역 예술영재들이) 어린 나이에 부모를 떠나 서울에 살거나 주말마다 레슨받으러 서울까지 안 가도 되면서 경제적 부담을 더는 효과도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학부모들 반응도 대체적으로 비슷했다.

장재완군 어머니 나태경씨는 “광주엔 전통예술 영재교육을 하는 곳이 없었는데 최고의 교육시스템을 갖춘 국립 영재원이 생겨 너무 감사하다”며 “지방에서 예술 전공 교육을 시키려면 돈도 많이 들고 좋은 선생님 찾기도 힘든데 아이나 저나 큰 혜택을 받은 것 같다. 주변에 적극 추천하고 싶다”고 했다.

◆지역 예술영재원 활성화 위한 과제는

시범운영을 포함해 예술영재원 지역캠퍼스가 도입된 지 5년가량 되면서 보완하거나 개선해야 할 점들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 지역캠퍼스 운영이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도록 한예종과 해당 지자체, 교육청, 예술영재원 서울 본원과 분원 간 긴밀한 협력체계가 구축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직까진 협력 관계가 느슨해 학생 모집과 지역캠퍼스 홍보 활동만 봐도 미흡한 실정이다. 지원자가 기대만큼 몰리지 않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통영캠퍼스의 경우 차로 3시간이나 걸리는 지역의 학생도 있는 등 지리적 접근성이 취약한 캠퍼스는 향후 학생 모집에 어려움이 클 수 있어 접근성 강화 방안도 요구된다. 올해 재정난 불똥이 예술영재원에도 튀면서 수업 시간과 모집 정원 축소에 영향을 준 데서 보듯 안정적인 운영 예산 확보 역시 중요하다. 다행히 내년 예산은 어느 정도 회복됐다고 한다.

이정희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원은 “지역캠퍼스 교육프로그램이 본원과 거의 동일한데 공통 교육과목과 지역별 영재들의 특성을 반영한 특화 프로그램으로 이원화하고, 지역캠퍼스별로 동일한 여건의 교육공간을 제공하는 가이드라인(지침)이 필요하다”며 “(본원 학생들을 지도하는) 한예종 주임·전공 교수들이 지역캠퍼스 학생들과 함께하는 기회도 늘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예종 교수들의 지역캠퍼스 마스터 클래스는 1년에 한두 번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허영한 예술영재원 원장은 “학생과 학부모의 높은 만족도가 영재원 지역확대 사업의 성과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며 “마스터 클래스 증대 등 사업 취지를 잘 살릴 수 있도록 여러 방안을 고민하고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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